흉기 난동 사건이 잇달아 벌어진 뒤 온라인상에 등장한 이와 유사한 ‘살인 예고 글’로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무장한 경찰특공대원들이 순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 신림역과 경기 성남 서현역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른 뒤, 온라인상에 수십건의 ‘살인 예고 글’이 올라오며 사회적 혼란이 커지고 있다. 검거된 작성자들은 “장난이었다”며 실제 범행을 저지를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주목을 받기 위해 시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킨 만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경찰청은 신림역 흉기 난동이 발생한 지난달 21일부터 이날 오후 6시까지 서울 혜화역, 경기도 부평 로데오거리 등에서 살인을 예고한 글을 올린 작성자 54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전날 오후 7시(30명)보다 24명 늘었다. 경찰은 이날 살인 예고 지역 등 89곳에 128명의 경찰특공대를 투입했다.
검거된 작성자들은 대부분 “장난이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지난 4일 “미사역 시계탑 앞에서 다 죽여줄게”라는 글을 올린 중학생은 경찰에 붙잡히자 “실제 사람을 살해할 마음은 없었고 심심해서 장난으로 게시했다”고 진술했다. 같은 날 “왕십리역 다 죽여버린다”는 글을 올렸다가 검거된 20대 남성 역시 “장난으로 글을 올렸다”고 했다.
사건 이후 갑자기 많은 양의 살인 예고 글이 올라오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다수의 주목을 받기 위해 강력 범죄를 희화화하는 심리가 작용하는 현상으로 보고있다. 상당수는 실제 범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폭력인만큼 테러에 가까운 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심각한 상황인데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희화화하거나, 오히려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윤호 동국대 명예교수(경찰행정학)는 “그들은 사회적인 관심을 끈다는 걸 즐길지 모르지만 많은 국민은 범죄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 빠진다”며 “불특정 다수를 불안에 떨게 한다는 점에서 ‘테러’에 준하는 정도로 여기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수사기관도 강력한 대응을 예고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날 전국 수사부장 긴급회의를 열어 형법상 협박·살인예비·위계공무집행방해 등 적용 가능한 처벌 규정을 적극 의율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살인 예고글에 ‘시간 또는 장소가 특정된 경우’에는 협박죄 적용 등을 적극 검토하고, 조사 과정에서 범죄실행의사가 어느 정도 확인되면 구속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또 경찰은 피의자 검거시 범행 실행 도구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거주지 등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도 적극 실시하라고 일선에 지시했다. 대검찰청 역시 살인 예고 범죄에 대해 법정최고형 처벌을 받도록 초동수사 단계부터 경찰과 협력할 것을 지시했다.
협박죄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으며, 살인예비까지 적용되면 법정형은 최대 10년형까지 가능하다. 이 경우 살해할 대상자가 구체적으로 특정되고 실행이 가능할 만큼의 준비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해당 글로 수사인력이 대거 투입된다는 점 등에 비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도 적용될 수 있다.
앞서 경찰은 “신림역에서 20명을 죽일 것”이라는 글과 함께 흉기 구매 내역 사진을 올린 ㄱ(26)씨를 지난 2일 협박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 “경찰을 찔러 죽이겠다”는 글을 올린 뒤 흉기를 들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을 돌아다닌 ㄴ씨 역시 특수협박·살인예비 혐의로 구속됐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