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의사가 되는 사람들은 가장 효율적으로 원하는 걸 얻고 싶어서 의사를 선택한 사람이 대다수인 것 같아요. 직업을 통해 높은 소득, 안정성, 사회적 지위를 기대하는 거죠.”
강원 삼척의료원 신경과 이진호(39) 과장이 15일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복무 기간이
38개월인 군의관, 37개월인 공중보건의사(공보의) 대신 18개월(육군 기준)인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의사가 늘고, 4∼5년간 수련의(인턴)·전공의(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대신 의대 졸업 뒤 일반의로 피부미용·성형 시술 등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그 결과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엔 의료진이 부족하다. 그는 “개인으로선 똑똑한 선택이겠지만, 의료인으로서의 자긍심이나 봉사심보다 효율성만이 우선시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최근 10년 새 ‘의대 열풍’이 불면서 적성과 상관없이 높은 소득을 기대하며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예전에는 상위권 학생 중 적성에 맞아야 의대를 갔는데, 지금은 적성에 상관없이 성적만 되면 의대로 쏠린다”며 “현재 학부모들은 아이엠에프(IMF)·리먼 사태를 겪으며 전문직에 대한 선호가 커진 세대고, 학생들도 취업이 어려운 현실을 보면서 ‘성적이 되면 의대에 간다’는 데 대해 학부모와 인식 차가 줄었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전문의 중 개업의 연봉 수준은 전체 노동자 평균보다 6.8배 높았다. 병원에 고용된 봉직의 연봉은 4.4배 높다. 봉직의 임금은 구매력 평가(PPP) 기준 19만2749달러로 자료를 제출한 28개국 중 가장 높았다.
너도나도 의사를 희망하면서 입시 경쟁도 치열해지고, 이를 뒷받침하는 소득과 정보력이 있는 계층에서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의대생 상당수는 소득 최상위계층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정복 의원실이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은 ‘국가장학금 신청 현황’을 보면, 올해 1학기 서울대·고려대·연세대(본교) 의대에서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학생 1050명 중 소득 9·10구간이어서 장학금을 받지 못한 학생 비율은 74.38%(781명)였다. 같은 기간 전국 39개 의대생 7347명 가운데 소득 9·10구간에 해당하는 학생은 56.54%에 달하는 4154명이었다. 올해 1학기 기준 소득 9·10구간은 월 소득 1080만원 이상이다. 지난해 1·2학기 전국 대학생 중 소득 9·10구간인 학생은 25.33% 수준이다.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출신 의대 진학도 눈에 띤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019∼2022년 서울대와 전국 의대 신입생 출신 지역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국 의대 정시 모집에서 강남 3구 출신 신입생 비율은 2019학년도 20.8%에서 2020년 21.7% 2021년 22.3%, 2022학년도 22.7%로 소폭 상승했다. 임성호 대표는 “이전에는 서울 강남이 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많이 보내던 지역이었다면, 지금은 ‘의대 많이 보내는 곳’이다. 수시와 정시, 편입 모두에서 최상위 계층이 의대에 진학하고, 의사 학부모가 자녀에게 의사 직업을 대물림하는 양상도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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