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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연장근로 단위 변경이 ‘자율성 확대’?…“사장님이 야근시킬 자유”

등록 2022-12-23 18:18수정 2022-12-23 20:56

노동자 ‘거부권’ 보장하지 않는 한
‘울며 겨자먹기’ 장시간 근로 가능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2022년도 노사문화 유공 및 지역 노사민정 협력 유공자 정부포상’ 시상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2022년도 노사문화 유공 및 지역 노사민정 협력 유공자 정부포상’ 시상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현재 주(週) 단위로만 관리하는 걸 연간으로 관리할 수 있게 확대하니까 장시간 노동을 조장한다고 얘기하는데, 거짓이다. 어느 때 많이 일하고, 적게 할 것인지 선택 메뉴가 늘어난다. 근로시간을 활용할 자율성은 확대되고, 연장근로시간은 30%나 감축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변경이 장시간 노동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개별 노동자에게 ‘연장근로 거부권’을 확실히 보장하지 않는 한 “사장님이 야근시킬 자유”만 강화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전문가 집단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연구회) 권고대로 현재 1주 12시간으로 규정된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면, 관리 단위마다 정해진 연장근로시간 총량(월 52시간·분기 140시간 등) 한도 내에서, 길게는 1주 최대 40.5시간(주 7일 근무)까지 연장근로를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더해 추가할 수 있다. 앞서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개편 제도를 “과반수노동조합 또는 노동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로 제도를 도입하고, 연장근로는 현행과 같이 개별노동자의 동의를 얻어 실시할 것”이라는 조건을 달아 근로기준법에 도입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런데, 노동자가 장시간 연장근로를 거부할 수 있을까? 지금도 1주 12시간 한도로 연장근로를 시킬 때 근로기준법에 따라 ‘당사자 간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연장근로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면, 회사는 연장근로를 시킬 때마다 노동자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 2000년 대법원은 “개별 근로자와의 연장근로 합의는 연장근로를 할 때마다 그때그때 할 필요는 없고 근로계약 등으로 미리 약정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노동자) 당사자가 거부하는 연장근로를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 근로기준법 취지”라고 밝히지만, 개별 노동자에게 명시적인 ‘연장근로 거부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근로기준법 ‘연장근로 관리 단위 개편’이 시행된 사업장 노동자는 입사할 때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근거로 1주에 많게는 40.5시간 동안 연장근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지윤선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에스피엘지회 회계감사는 “주 69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생산 일정이 짜여 있는 상황에서 52시간만 일하겠다는 노동자는 심적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시설관리업체 인사담당자도 “회사가 69시간 일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를 못 받아들이는 사람은 저성과자로 보일 것 아니냐”며 “법이 악용될 가능성을 언제나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회사가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정부가 밝히는 ‘근로시간 활용 자율성’은 ‘사장님이 마음대로 야근 시킬 수 있는 자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연장근로에 대한 ‘당사자간 합의’ 요건을 엄격하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일 열린 ‘노동법연구소 해밀’ 10주년 기념 토론회 발표문에서 “연장근로가 이뤄지기 전 1주일 이내에 연장근로를 할 날과 연장근로 시간을 특정한 상태에서 근로자가 이에 동의해야 근로기준법상 유효한 ‘당사자 간 합의’로 봐야 한다”며 “연장근로는 근로자 휴식권을 희생하고 새로운 근로 의무를 형성시키는 것으로,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에도 유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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