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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노사합의로 재해 예방 말뿐…“재판도, 현장도 다 회사 편”

등록 2023-01-27 05:00수정 2023-01-27 07:40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노동자 배제한 ‘자율 규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이 지난해 11월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이 지난해 11월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현장에서도, 재판장에서도 법은 다 회사 편이에요. 매번 말로는 ‘노사’라고 하지만, 그럴 거면 ‘사측합의’지 그게 왜 ‘노사합의’입니까?”

지난해 7월부터 경남 창원지법에서는 자동차 부품 제조사 대흥알앤티 대표이사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3월 회사가 제공하는 세척액을 사용하던 노동자 13명이 집단 급성 간중독을 일으켰고, 검찰은 성능이 저하된 국소배기장치를 방치한 혐의로 회사 대표이사를 불구속기소했다. 피해 노동자들은 재판에 참석했지만, 일곱 차례 공판에서 발언권을 거의 얻지 못했다. 피해자 쪽 변호인이 형사소송법에 따라 공판기록 열람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거부했다. 김준기 금속노조 경남지부 대흥알앤티지회 사무장은 “첫 재판 때는 피해자들이 대거 참석했지만 진술권도 없고 회사 쪽 주장에 반박할 기회도 얻지 못해 점점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라며 “중대재해처벌법 ‘불기소 이유서’도 변호사가 신청해 뒤늦게 받았다. 회사 기밀이고 사용자 쪽 명예 때문에 안된다는데 하는데 결국 피해자는 아무것도 몰라야 한다는 논리 아니냐”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중대재해 예방과 관련해 ‘노사 참여’를 통한 자율 규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노동 현장과 재판 과정에서는 노동자가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고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을 위해 노·사가 함께 하는 ‘위험성평가’ 제도를 개편한다고 강조했지만, 실질적으로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많은 사업 현장의 위험성 평가가 노동자의 형식적 참여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는 윤석열 정부의 ‘자율’ 강조가 제도를 퇴행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김 사무장은 “분기별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열려도 사쪽은 매번 회의마다 ‘생각해보겠다’는 답변만 하고 제대로 심의·의결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 ‘노동자 의견 청취’라고 한다”라며 “전혀 개선 되지 않는데 의견을 청취했다는 이유로 회사의 책임이 덜어진다면, 어떤 노동자가 요구사항을 말하고 싶겠나”고 말했다.

소수노조라는 이유로 안전 관리에서 배제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10월 20대 노동자가 밤샘 근무 중 소스 교반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에스피엘(SPL)에서 소수노조인 민주노총 에스피엘지회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노사협의회에 참여를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 지윤선 민주노총 에스피엘지회 회계감사는 “회사에 위험성 평가 자료 5년 치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제공을 거부했다”며 “‘깜깜이 안전 진단’이 반복되고 있는데, 노동자의 안전이 어떻게 ‘자율’이란 말과 연결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고가 일어난 뒤 노동자들이 재판에서 배제되기 일쑤지만, 전문가들은 노동자 보호를 위해 재판 과정에서 알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흥알앤티 피해자 대리인을 맡은 박다혜 민주노총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들 중에는 일용직 노동자 등 동료 노동자를 업무상과실치사죄 등으로 같이 기소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것인데, 노동자의 자료 확보가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며 “사건 이후 초기 재해조사 과정부터 재판까지 전 과정에 제도적으로 노동자 참여가 보장이 안되니 조사 담당자 재량에 기댈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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