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경남 창원의 두성산업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창원지법 218호 법정. ‘중대재해처벌법 기소 1호 사건’ 두성산업의 재판이 열렸다. 이날 피고인석에는 피고인 두성산업의 대표 천아무개(44)씨와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화우의 변호인단 등이 나섰다.
천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된 뒤 변호인단은 30여분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요청했다. 특히 변호인단이 교통사고와 중대재해를 비교하며 중대재해처벌법이 과잉입법이라 주장하는 대목에선 방청석에서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로 첫돌을 맞지만, 법 시행 초기부터 사용자들은 이 법안이 위헌이라 주장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맞장구치며 법을 완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고, 보수 언론들은 이를 지원사격하고 있다. 일터에서 죽거나 다치는 노동자가 없도록 노력하자고 마련된 법률안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법령 사문화를 위해 정부·여당과 기업, 언론이 힘을 모으는 형국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성을 두고 다툼이 가장 첨예한 사건은 노동자 10명이 독성물질에 노출돼 급성간염에 걸렸던 경남 창원의 두성산업 사건이다. 에어컨 부품 제조업체인 두성산업에서 파이프를 닦을 때 쓴 세척제에 독성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이 기준치의 6배 넘게 들어 있었지만, 이 업체에는 최소한의 보건조치라 할 수 있는 ‘국소배기장치’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 검찰은 두성산업과 천 대표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전보건 의무 규정과 처벌 규정 등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는데, 이들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는 해당 조항들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이 조항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 조항이다.
당장 재판부가 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헌법재판소의 심판 절차로 넘어가고, 두성산업 재판이 정지되는 것은 물론 이 법규정이 적용된 다른 재판도 정지될 가능성이 크다. 두성산업의 1심 재판 절차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어 법원은 조만간 제청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두성산업 쪽은 관련 조항들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법의 내용이 모호하고 불명확해 자의적인 법 집행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두성산업 쪽은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처벌하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5년 이하 금고형)과 비교하며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노동자 사망 시 1년 이상(최대 30년)의 징역을 규정하는 등 법정형이 과도하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교통사고와 산업재해를 놓고 법정형을 비교하는 주장은 사안을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것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국내 260만여개 사업장의 업종과 규모 등에 관계없이 규제하는 법조문이기 때문에, 법규정을 추상적으로 최소한만 규정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표현이 광범위하고 불명확하다’는 것은 ‘위헌 주장’을 할 때 손쉽게 쓰이는 논리다. 명확성의 원칙 위배로 위헌 판단이 나오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법률원의 박다혜 변호사도 “형사범죄의 법조문은 추상적인 개념을 사용해 구성요건을 설명하고 죄질 등에 따라 형량을 구체화하는 판례가 축적되기 마련”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이 과도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여론전을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사용자 쪽의 위헌 시비에 더해 정부와 여당에서는 아예 법조문의 완화를 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경제단체를 만나 “중대재해처벌법에 결함이 많다.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언급했고, 당·정은 중대재해 예방 정책을 ‘자율 규율’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으며,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특정한 예방 조치를 마친 사업주의 형사처벌을 감경하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권영국 공동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효과를 거두려면 위반 시 처벌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정부에서 ‘법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이런 메시지가 계속되면 현장에서는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갖추려 노력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의 김덕현 변호사는 “현재 처벌 규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안전 및 보건관리 의무가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데, 자율 규제로 처벌 수단마저 없어진다면 산업 현장의 안전은 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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