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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안전 ‘기본’만 지켰어도 644명 살릴 수 있었다

등록 2023-01-27 05:00수정 2023-01-27 10:10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기소 11건 공소장 전수 분석결과
책임자 업무소홀·매뉴얼 미비 등
13개 안전의무 중 2개 이상 위반
사업주 안전의식 ‘여전히 1년전’
지난해 10월 26일 오후 서울역 지하철 12번 출구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렸다. 한 참가자가 중대재해 최고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든 채 눈을 감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해 10월 26일 오후 서울역 지하철 12번 출구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중대재해 처벌 무력화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렸다. 한 참가자가 중대재해 최고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든 채 눈을 감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해 2월23일 오전 10시 제주도 제주대학교 생활관 공사현장에서 해체중이던 12m 짜리 굴뚝이 반토막났다. 반으로 동강난 6m짜리 구조물은 굴착기 운전석을 그대로 덮쳤고, 해체작업을 도급받은 하청업체 대표인 운전자는 현장에서 숨졌다. 사고는 굴뚝 해체 작업을 윗 부분이 아닌 중간 부분부터 시작한 탓에 발생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미비한 안전보건관리체계에 있었다. 작업 전 굴뚝의 구조와 주변환경에 대한 조사도 없었고 작업계획서도 없었다. 현장소장을 비롯한 안전관리자도 현장에 없었다.

제주지검은 같은해 12월30일 공사를 발주한 원청업체인 제동종합건설 대표이사 전아무개씨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대표이사 전씨가 현장소장을 비롯한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지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지 않아 해체 구조물에 대해 사전조사 없이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거나 적정 인력을 배치하지 못하게 했다”며 “굴뚝 해체작업의 위험과 예방대책에 대한 종사자 의견을 듣지 않아 사전대책이 수립·시행되지 않아 굴착기 운전자가 숨졌다”고 공소장에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월27일부터 12월31일까지 중대산업재해 229건이 발생했으나,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11건, 실제 재판이 진행된 사건은 2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한겨레>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맞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해당 법 위반으로 기소된 기업 대표이사의 공소장 11건을 입수해 전수 분석한 결과를 보면, 11명의 대표이사 모두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게 재해 예방을 위한 권한과 예산을 부여하지 않거나, 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것(시행령 4조5호 위반)으로 나타났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시행령이 노동자의 안전·보건 확보를 위해 13가지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나, 대표이사들은 한 사고에서 여러 개의 의무를 위반한 사실도 확인됐다.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모호하다’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해왔지만, 검찰은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11명의 경영책임자를 기소하며 지적한 위반 사항을 분석해보면,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해당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의무(시행령 4조5호) 위반이 11건으로 가장 많았다. 유해·위험요인을 점검하고 이에 따른 조처를 이행하는 위험성 평가 의무(시행령 4조3호) 위반이 7건으로 뒤를 이었다. 유해화학물질을 다루고 있음에도 작업장 내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노동자 10명을 집단 독성 간염에 걸리게 한 경남 창원의 두성산업이 위험성 평가 의무를 위반한 대표적인 사례다. 검찰은 형식적인 위험성 평가도 의무 위반으로 봤다. 지난해 3월 경기 부천의 공사현장에서 190㎏ 철근이 떨어져 하청노동자가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검찰은 “이동식 크레인 기사 등 해당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참여 등을 통해 실질적 위험요인을 찾아내 평가할 수 없도록 했다”며 건설업체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기소된 11건 가운데는 외부기관에 안전점검을 받은 뒤, 지적사항을 이행하지 않아(시행령 5조2항2호 위반) 발생한 사고도 있었다. 지난해 7월 경남 양산의 자동차부품제조 업체인 엠텍에선 작동 중인 기계의 금형(금속틀)을 청소하던 이주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졌다. 해당 기계는 안전문이 열리면 작동을 멈추게 하는 방호장치가 고장난 상태였다. 엠텍은 사고가 나기 9개월 전 대한산업안전협회 점검에서 ‘작업을 지속하려면 즉시 개선이 필요한 상태’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개선 조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의무가 이행되지 않는 사실을 인식했음에도 관리상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공소장에 밝혔다.

11건의 공소장을 보면, 13가지 의무 가운데 한 가지만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는 없었다. 11건 모두 2~6개의 의무를 위반했다. 지난해 3월 인천의 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재재하청’ 노동자가 숨진 시너지건설의 경우 경영책임자가 6가지 의무를 위반했으며, 엠텍과 제동종합건설 대표는 5가지 의무를 위반했다.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경영책임자의 의무가 모호해서 지키기 어렵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모호한 것은 법이 아니라 ‘안전의식’이라고 지적한다. 권영국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는 모호한 게 아니라 경영책임자가 번거로워서 지키지 않은 의무였음이 확인됐다”며 “검찰이 공소장에서 지적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만 제대로 적용되면 중대재해를 감축하는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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