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의 한 시중은행 지점에서 28일 오후 창구 직원들이 손님들과 상담하고 있다. 이 은행은 3월에 창구·콜센터 등에서 업무를 보던 계약직 직원 3천여명을 정규직과는 임금·승진 등의 구조적 차별이 있는 별도 직군으로 전환시켰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차별없는 노동 차별없는 사회]
“해고불안 벗었지만 임금 등 나아진 게 없다”
“해고불안 벗었지만 임금 등 나아진 게 없다”
“분리직군 제도가 도입돼 정규직도 아니고 계약직도 아닌 ‘중규직’이 됐다. … 지금 나는 은행에 (늦은 저녁 시간까지) 남아 목표설정 계약을 한다. 정규직은 안 하는데, ‘중규직’만 하고 있다. 이번 달 월급은 딱 100만원, 대졸자 5년차인데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다녀야 하는지 회의가 든다.”(시중은행 한 행원, 인터넷 카페 ‘전국 은행계약직 모임’(http://cafe.daum.net/geyag) 게시판)
“정규직으로 일하던 농협에서 퇴직당한 뒤 계약직으로 같은 일을 9년 동안 하고, 지난달부터는 무기계약직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에선 벗어나 반갑지만, 그거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 나는 분명 ‘정규직’은 아니다. 교통비, 중식비까지 차별받는다. 정규직처럼 상여금 700%를 준다고 해 ‘좋아라’ 했더니, 계약직 때 받던 월 210만여원의 기본급이 135만원으로 깎였다. 상여금 700%를 받아도 연간 임금은 변화가 없도록 만든 거다. 먹고 살기 힘들다.”(농협 전남지역본부 ㅇ씨·49)
비정규직법 시행을 계기로 ‘비정규직 차별’이 ‘정규직 내 차별’로 확대되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이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천명 단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분리직군 편입’이나 ‘무기계약직 전환’ 등으로 “정규직화했다”고 잇따라 발표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에겐 상대적 박탈감이 여전하다. 계약직 노동자들의 인터넷 카페에는 공감, 신세 한탄, 위로 등이 담긴 글들이 줄을 잇고, 제도적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꼬리를 물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분리직군이나 무기계약직이 돼도 임금은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고, 직군 사이 이동은 불가능하며, 승진도 하급 간부 이하로 원천봉쇄돼 있다. ‘고용보장’의 이면에는 ‘영구적인 차별’, ‘영원한 2등 직원’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셈이다.
이런 구조적 차별에 마침내 분리직군 전환을 거부하고 ‘차라리 비정규직으로 남겠다’는 노동자도 나올 정도다. 우리투자증권의 한 지점에서 창구업무를 해 온 ㅎ(30)씨는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5년째 해 와 비정규직법이 시행되고 나면 정규직이 될 줄 알았는데, 회사 쪽은 ‘업무 성적이 나쁘면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다’는 단서까지 달린 무기계약직을 제안했다”며 “같은 처지의 동료 26명과 함께 이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내놓은 분리직군의 최고 호봉이 공채로 들어오는 ‘진짜 정규직’ 대졸 신입사원 1호봉보다도 적다”며 차별시정 요구를 통해 비정규직의 정당한 권리를 찾겠다고 말했다.양상우 황보연 기자 ysw@hani.co.kr
▶ ‘무기계약직’ ‘분리직군’ ‘하위직제’ 등 ‘유사정규직’ 속출 ▶[자문위원 평가] “차별 고착화” “현실적 차선책” 극과 극 ▶공공부문도 ‘중규직’ 넘쳐나
한국언론재단
▶ ‘무기계약직’ ‘분리직군’ ‘하위직제’ 등 ‘유사정규직’ 속출 ▶[자문위원 평가] “차별 고착화” “현실적 차선책” 극과 극 ▶공공부문도 ‘중규직’ 넘쳐나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