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넥슨 사태’ 당시 성우 김자연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던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게임업계에 불고 있는 ‘사상 검증’ 광풍에 맞서 여성 프리랜서 일러스트 작가들이 연대 조직을 만들어 대응에 나섰다.
11일 출범한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는 여성 프리랜서 일러스트 작가들만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연대다. 게임 일러스트 작가 대다수는 게임회사와 용역 계약을 맺고 일러스트를 납품하는 프리랜서다.
연대는 “게임업계의 연이은 사상 검증 광풍 속에서 작가 개개인이 대처하기 어려운 수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앞으로 그 피해가 멈추리라는 보장도 없다”며 “작가들이 단결해 부당한 처우에 함께 대처하며,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연대 출범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게임업계 내 ‘사상 검증’ 광풍은 2016년 ‘넥슨 사태’ 이후 꼬박 2년 만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넥슨 사태’는 2016년 7월 국내 대형 게임업체인 넥슨이 자사 온라인게임 ‘클로저스’ 제작에 참여한 성우 김자연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페미니즘을 표방한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캐릭터 음성을 교체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김자연씨뿐만 아니라 그의 입장을 지지한 동료들과 웹툰 작가들까지 이른바 ‘메갈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고, 각종 악플, 인신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넥슨은 “게임 이용자들이 게시판을 통해 항의해왔고 우리(게임사)로서는 이용자들의 동향에 민감하게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지만 “누구도 여성혐오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혐오 폭력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면서 일부에선 넥슨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 벌어지고 있는 게임업계 내 ‘사상 검증’ 광풍은 피해 작가가 다수라는 점에서 2년 전보다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3월21일 <소녀전선>을 시작으로 <소울워커>, <벽람항로> 등에서 캐릭터와 일러스트가 잇따라 교체됐는데, 모두 해당 작가에 대해 ‘메갈 의혹’이 제기됐다는 이유에서였다. ‘메갈’의 정의조차 모호한 상황에서, 이 작가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페미니즘 강의나 여성 인권과 관련된 글을 싣거나 ‘좋아요’를 누른 점 등이 빌미가 됐다.
심지어 국내 게임개발사 IMC게임즈의 김학규 대표는 여성인권단체 ‘여성민우회’와 여성주의 정보생산자 조합 ‘페미디아를 ‘팔로우’했다는 이유를 들어 여성 직원을 면담하고 해당 면담 내용을 자사 누리집에 실명으로 싣기까지 했다. 작가에게 ‘나는 메갈리아와 관련이 없고,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인 선언을 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이를 거절하자 바로 게임에서 일러스트를 삭제한 곳도 있다.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는 무분별한 ‘사상 검증’의 뿌리가 된 게임업계 여성혐오 타파와 부당계약, 계약금 미지급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안에 공동 대응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그동안 공유가 어려웠던 일러스트 단가와 계약서 관련 정보를 교류하고, 법적 대응이 필요한 피해에 대한 상담, 법적 자문과 비용을 지원키로 했다. 이 밖에도 연대는 여성 작가들의 활동을 장려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연대 가입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1차 가입기간은 11일부터 7월2일까지이며, 여성프리랜서일러스트레이터연대 카페(
▶바로 가기)에서 신청을 받고 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