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소설가
희망나무 /
“쌀은 농부의 목숨과 매한가진기라.”
우리 집에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큰아버지가 오셨습니다. 큰아버지는 아버지와 열다섯 살이나 차이가 납니다. 마흔 다섯 살인 아버지와 머리가 희끗희끗한 큰아버지는 마치 부자지간처럼 보입니다. 나는 하마터면 할아버지 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할 뻔 했습니다.
“영훈이 인자 중학교 삼학년이제? 마이 컸구나.”
좀체 서울에 오는 법이 없는 큰아버지께서 한미 FTA 반대 시위에 참석하러 왔다가 들렀다고 하시자 아버지의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형님, 몸 생각하셔야지, 그 연세에 다치면 어쩌시려구요.”
“다치는 게 뭐 대수냐? 지금 이 나라 곳간 열쇠가 다 넘어가게 된 판국인데. 내는 단지, 내 땅에서 마음 놓고 농사짓고 싶은 기 소원이다. 쌀도 수입하고 광우병에 걸맀을 지도 모리는 쇠고기까정 수입하겠다는데 가만히 있게 생깄나?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우리 영훈이가 먹는다고 생각해봐라.”
으! 세상에, 그 무시무시한 광우병이라니! 가슴이 섬뜩합니다. 한우를 세 마리나 키우는 큰아버지는 소를 키워 우리 아버지 대학 뒷바라지도 해주신 분입니다. 큰아버지를 보면 커다랗고 순한 눈을 꿈뻑꿈뻑하는 누렁소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님, 한미FTA는 세계적인 무역 자유화 추세에 따라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이자 우리 경제가 도약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입니다. 물론 농업이나 서비스부문처럼 손해를 보는 분야도 생기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해외에서 기업이 많이 들어오면 일자리도 늘지 않겠습니까?” “나라 살림을 맡은 양반들은 반대하는 사람들을 지 밥 그릇 챙기는데 급급하다고 하지만, 그기 아인기라. 한미FTA로 이득을 보는 재벌 기업이 농사를 못 짓는 농민들과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 다 믹이 살리 준다카더나? 나라의 운명을 좌우 할 일이마 먼저 국민들 의견을 묻고 그케야 되는 기 아이가? 무슨 떼돈을 벌어들일지는 모리겠지만, 농약과 유전자 조작에 찌든 음식을 우리 밥상에 올리는 기 무슨 발전이고?” “형님, 국익이 뭔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경제성장이 최우선 과제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국민들이 나눌 몫도 커지고 말입니다.” “내는 싫다. 미국 농부들 살리자고 와 우리가 죽어야 하노 이 말이다. 쌀을 빼앗기마 나라의 혼을 빼앗기는 기라. 쌀은 농부의 목숨과 매한가진기라.” 큰아버지께서는 이 말만 하시고 입을 꾹 닫아버립니다. 헐벗은 산맥 같은 주름이 이마에 가득한 큰아버지는 아직 싸울 힘이 남아 있는 늙은 황소처럼 보입니다. 김옥숙/소설가
으! 세상에, 그 무시무시한 광우병이라니! 가슴이 섬뜩합니다. 한우를 세 마리나 키우는 큰아버지는 소를 키워 우리 아버지 대학 뒷바라지도 해주신 분입니다. 큰아버지를 보면 커다랗고 순한 눈을 꿈뻑꿈뻑하는 누렁소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님, 한미FTA는 세계적인 무역 자유화 추세에 따라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이자 우리 경제가 도약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입니다. 물론 농업이나 서비스부문처럼 손해를 보는 분야도 생기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해외에서 기업이 많이 들어오면 일자리도 늘지 않겠습니까?” “나라 살림을 맡은 양반들은 반대하는 사람들을 지 밥 그릇 챙기는데 급급하다고 하지만, 그기 아인기라. 한미FTA로 이득을 보는 재벌 기업이 농사를 못 짓는 농민들과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 다 믹이 살리 준다카더나? 나라의 운명을 좌우 할 일이마 먼저 국민들 의견을 묻고 그케야 되는 기 아이가? 무슨 떼돈을 벌어들일지는 모리겠지만, 농약과 유전자 조작에 찌든 음식을 우리 밥상에 올리는 기 무슨 발전이고?” “형님, 국익이 뭔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경제성장이 최우선 과제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국민들이 나눌 몫도 커지고 말입니다.” “내는 싫다. 미국 농부들 살리자고 와 우리가 죽어야 하노 이 말이다. 쌀을 빼앗기마 나라의 혼을 빼앗기는 기라. 쌀은 농부의 목숨과 매한가진기라.” 큰아버지께서는 이 말만 하시고 입을 꾹 닫아버립니다. 헐벗은 산맥 같은 주름이 이마에 가득한 큰아버지는 아직 싸울 힘이 남아 있는 늙은 황소처럼 보입니다. 김옥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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