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숙의 학부모코칭
고현숙의 학부모코칭 /
8년 전 한 워크숍에서 사명서를 쓰던 중이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나의 역할을 표현하려다,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깊게 생각하니 아이들에 대한 나의 사랑이 매우 조건적인 것 같았다. ‘우리 착한 아들,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말 잘 들었으니까 선물을 사 줄게.’ ‘공부 열심히 했어? 그렇다면 칭찬받을 자격이 있지.’ 곰곰이 따져 볼수록 내가 아이들에게 조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게 분명하게 보였다. ‘네가 사랑받을 만하다는 걸 입증한다면, 나는 사랑을 주겠다.’ 와, 이것이야말로 조건의 극치 아닌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 ‘네가 설령 잘못해도, 비뚤어진 행동을 보이더라도, 너의 어떤 행동과도 상관없이 너라는 존재를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것. 내가 낳은 아이들에게조차 이 명제는 대단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사랑받을 만해야 사랑을 받는다는 생각 속에 자라 온 것 같다. 세상은 공부를 잘해야 칭찬을 받을 수 있고, 착하게 굴어야 귀여움을 받을 수 있는 냉혹한 세계였다. 그 보상을 받으려면 내가 하고 싶은 걸 참고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며, 좋은 대접을 받는 데는 대가가 따르는 것이 공정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운이 좋아서, 집안이 좋아서, 혹은 특별한 이유 없이도 대접을 받거나 너그러운 관용의 대상이 되는 이들을 볼 때, 내가 왜 은근히 속이 상했는지가 분명해졌다. 나는 엄청 노력해야 받는 상을 어떤 이는 아무 수고 없이 공짜로 받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암, 그건 불공정한 일이다. 속으로 ‘내 성격은 왜 너그럽지 못하고 엄격할까’ 하고 고민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도 거기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내 사랑이 조건적인 것을 깨닫고 나니, 그제야 비로소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남을 위한 거라는 나의 행동과 감정에서 조건적인 사랑의 한계를 보았다고 할까. 이건 마치 영원할 것 같았던 낭만적 사랑을 더는 믿지 않게 되면서, 사랑을 위해 뭔가 노력해야 함을 깨닫는 것과 같다. 여전히 불 같은 사랑만을 꿈꾸는 사람에게 이것은 피하고 싶은 쓸쓸한 진실이지만. 그래서 때로 진실은 쓰라린 것이다.
내가 조건적인 사랑을 곧장 뉘우치고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 수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또다른 차원이다. 다만 내 방식의 한계를 깨달은 것 그 자체가 다른 방식, 즉 무조건적인 사랑의 귀함과 높음을 인정하게 만들었다고 할까.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직원들에게, 친구들에게도 어떤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들은 때로 나를 실망시키고 화나게 만든다. 심지어 일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이 그들에게 투사될 때가 있다.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방어적인 태도로 대하기도 한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았다. 친구이기 때문에 그냥 믿어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아이들을 무조건 지지해줄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코치이자 부모라고 할 수 있겠지.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 도량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만 한 인간으로서, 나의 태도가 매우 조건적인 것임을 성찰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 Helen@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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