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변호사 조영래>박상률 지음/사계절
[함께하는 교육] 우리말 논술 /
중학진로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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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수준-중2~고1]
12. 꽃들에게 희망을
13. 인권 변호사 조영래
14. 처절한 정원
■ 이 책, 알고 보면 재미있다! 작가 박상률은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전남대를 졸업했다. 1990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6년에는 ‘문학의 해 기념 불교문학상’ 희곡 부문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진도아리랑>을 비롯해 인물 이야기 <나비박사 석주명>, 장편소설 <봄바람> <나는 아름답다>, 동화 <바람으로 남은 엄마> <까치학교> <어른들만 사는 나라> 등이 있다. 내용 조영래는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고집이 세긴 했지만 순수하고 다소 엉뚱했다. 유지공장을 운영하던 부모님은 사업을 이어가기 힘들게 되자 서울로 이사를 온다. 그는 대학에 들어간 큰누나의 도움으로 학업에 열중해 당시로선 경쟁이 매우 치열했던 경기중학교에 입학한다. 좁은 집에서 지내기 갑갑해 집 뒤 절에 자주 놀러갔던 조영래는 그곳에서 스님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한문과 불경을 배운다. 스님들의 가르침은 중학생 조영래를 신중하면서도 확고한 주관과 이치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아이로 만드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 잠시 방황하던 그는 스님이 되겠다고 가출했다가 이내 돌아오기도 했다. 경기고에 들어간 조영래는 웅변반과 불교학생회, 농촌 연구반에서 활동하며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서울대 전체 수석으로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계속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다. 졸업 후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중 전태일 분신 사건이 일어나자, 그는 친구 장기표와 함께 전태일 장례식을 치르면서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 입소했으나 ‘서울대생 내란 예비 음모 사건’으로 구속된다. 서울대 출신들이 정부를 뒤집어엎은 뒤 각계 대표를 중심으로 새 정부를 세우려 했다는 죄목이었다. 1년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나온 뒤에 이번에는 다시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돼 6년간 숨어 지내야 했다. 조영래는 숨어 지내는 동안 <전태일 평전>을 완성한다.
유신 체제가 무너지면서 복권이 이뤄졌고, 그는 1983년 ‘시민 공익 법률상담소’를 연다. 처음으로 맡은 ‘망원동 수재 사건’에서 행정 당국을 상대로 승소했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여성 조기 정년제’ 사건, ‘연탄공장 주변 진폐증 환자 사건’ ‘대우 어패럴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터지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 군사정부의 부도덕성을 드러냈다. 1990년 폐암으로 43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 깊이 생각하기 인물 이야기를 읽는 목적은 한 인물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와 그 인물이 추구했던 신념과 열정 등을 배우기 위해서다. 그럼 어떻게 읽어야 인물 이야기를 잘 읽는 걸까. 먼저 그 시대를 살펴야 한다. 조영래는 해방 후에 태어나 1980년대까지 살았다. 이 시기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심한 몸살을 앓았다. 다음은 인물의 성장환경이다. 조영래는 성실한 부모님과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자랐다. 공부를 열심히 해 대학에 들어간 누나들은 조영래의 지적 성장에 많은 도움을 줬다. 특히 사춘기 때 집 근처 절에서 스님에게 배운 한문과 불경은 조영래의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가 사회에 공헌한 점을 살펴보자. 그는 변호사가 되자마자 시민을 위한 법률상담소를 차렸는데, 그가 맡은 사건은 주로 힘없는 주민들과 여성,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망원동 수재 사건만 해도 주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영래는 꼼꼼하고 치밀한 준비로 승소해 새로운 시민운동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조영래를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당국이 사건을 은폐해 성고문 경찰관을 무죄 혐의로 풀어줬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제5공화국 정권이 막을 내린 뒤 경찰관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진실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인물의 시대와 성장환경, 업적을 알아보았다면 이번에는 인물이 어떻게 자신의 장점을 키워 스스로 성장했는지를 알아본다. 조영래는 적극적이고 활달했다. 선입견 없이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처지가 어려운 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수업료를 못 낸 친구를 대신해 자기 수업료를 낸 일도 그렇고, 전태일 사건이 났을 때 누구보다 앞장서 장례를 치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청소년 때부터 신문을 자주 보고 토론을 즐겼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경제학 공부를 열심히 했고, 신문읽기 모임을 했다. 책을 체계적으로 읽기 위해 독서계획표까지 짰다. 그가 인권변호사로 일하게 된 것은 감옥 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법을 잘 모르거나 잘못된 법으로 인해 죄수가 된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에게는 감옥도 또다른 ‘학교’였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목청만 높이는 변호사는 아니었다. 사건을 맡을 때마다 함께 일하는 다른 변호사들과 협력해 치밀하게 변론을 준비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파고드는 집중력 덕분에 그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 책 속에 나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아름다운 세상’ 꿈꾸며… 의사소통 능력 어떻게 기를까? “권양….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 온 국민이 그 이름은 모르는 채 그 성만으로 알고 있는 이름 없는 유명 인사, 얼굴 없는 우상이 되어버린 이 처녀는 누구인가.”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 조영래가 변론을 시작하면서 한 말이다. 이날 조영래는 ‘권양의 투쟁’을 상기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진실을 감옥에 가둘 수 없다던 그의 말대로 결국 이 사건은 군사정부의 부도덕성을 드러냈고 사람들의 분노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이 책 곳곳에 나와 있듯이 조영래는 대중을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그는 자상하고 따뜻한 감성으로 다른 사람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줄 알았고, 때로는 강한 설득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았다. 바쁜 변호사 일 중에도 잡지와 신문을 통해 언론 활동도 했다. 어떻게 하면 조영래처럼 다른 사람에게 자기 의견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대중 앞에서도 움츠리지 않고 말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의사소통의 시작은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는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한번 해 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별로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자신의 말투에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한 말을 녹음해 들어보는 것도 말투를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화를 나눌 화제를 고를 때는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 상대방의 관심사를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다음에 다시 대화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사람을 편안하게 바라보면서 말하는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반응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상대방이 하는 말에 흥미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한편, 듣다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은 물어본다. 이번에는 상대방이 느끼고 있는 감정에 호응해 주는 단계다. 감정에 호응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 표정이나 몸짓으로 긍정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고, “아, 그때 많이 속상했겠군요”라고 구체적으로 상대방이 느낀 감정을 읽어줄 수도 있다. 남의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분노나 실망, 좌절 등을 표현할 때는 ‘네’가 아닌 ‘나’를 주어로 하는 문장을 쓴다. 예를 들어 “넌 거짓말을 하고 있어”라고 말하지 말고 “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또 상대방의 잘못을 나무랄 때도 너무 다그치지 말고 출구를 열어두어야 한다. “네가 일부러 그랬지?”하는 것보다 “네가 나한테 나쁜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러 심리학자들이 쓴 책을 보면 의사소통 가운데 말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7%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93%는 말투, 태도, 자세, 시선 같은 말 이외의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투나 태도, 시선 등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평소 자신을 긍정하고 믿는 자존감이 그 바탕이 된다. 또 자기도 모르게 굳어버린 습관이 의사소통의 걸림돌이 된다. 결국 의사소통 능력도 노력을 통해 발달한다.
■ 나대로 책 읽기 ‘의료계의 조영래’가 되고 싶어요
강남중 2학년 문지혁
조영래가 태어난 시대는 일본으로부터 벗어나긴 하였지만, 아직 새로운 정부가 세워지지 않아 어수선한 시대였다. 조영래는 어릴 때부터 여러 면에서 변호사가 될 만한 자질을 보여주었다. 동네 근처 절에서 스님들로부터 한문과 불경을 배운 점이 특히 그렇다. 스님들의 가르침은 조영래가 나중에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서울대 수석 합격자였다. 하지만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를 위한 공부만 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지식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고 대학 시절 내내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행동하였다. 전태일 분신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누구보다 먼저 달려간 사람도 조영래였다.
그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오히려 감옥에서 많은 걸 배웠다. 시련이 오히려 그에게 굳은 신념을 심어준 것이다. 조영래가 인권을 생각하게 된 계기도 감옥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이다. 감옥에 있는 이들 중에는 생활형편이 어려워서 도둑질을 했거나 도둑으로 몰린 사람들도 있었다. 조영래는 총칼을 든 자들이나 그들에게 빌붙어 국민의 피를 빨아 먹는 진짜 큰 도둑들은 잡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편에 서서 그들의 인권을 위해 일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1년 6개월의 감옥 생활을 하고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수배되어 숨어 지내게 되었을 때도 조영래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 기간 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았고 전태일 평전을 썼다.
조영래가 전태일에 대한 전기를 쓴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당시에 전태일 사건은 그냥 사건 중 하나로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조영래는 전태일이라는 청년을 진정한 사람으로 보았다. 조영래 같은 젊은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전태일의 뜻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역사적으로 의미를 지니게 된 것 같다.
조영래에게 또 감동한 점은 그의 용기이다. 서울대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할 정도면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검사나 판사, 정치인이 되어 권력을 손에 쥐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그는 힘없는 시민들을 위한 법률상담소를 차려 밤낮으로 현장을 뛰며 변론을 준비하였다. 1987년 ‘상봉동 진폐증 환자 사건’도 무료 변론을 자청하여 승소하였으며, 다른 변호사들이 꺼려하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도 기꺼이 맡았다.
만약 조영래 같은 사람이 그 시대에 없었다면 누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억울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었을까? 조영래가 그들 편에 서서 변론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는 조금이나마 진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꿈이 의사이다. 텔레비전에서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의사가 되어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조영래는 법으로 사람들을 도왔다면 나는 치료를 통해 사람들을 돕고 그들을 위해 몸을 바치고 싶다. 그러려면 조영래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뭐든지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와 강한 집중력을 배우고 싶다.
조영래는 그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었다. 만약 지금 이 시대에 조영래가 살아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좀더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내 꿈을 위해 한걸음 더
<십시일反>
박재동 외 9명/창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인간다운 권리를 지켜주려 애쓴 인권변호사 조영래. 저자 말대로 오늘날 조금이라도 민주화가 이뤄진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조영래 변호사처럼 자기 한 몸을 돌보지 않고 온몸으로 불의에 대항했던 분들의 덕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조영래가 살았던 시대와 양상은 다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법에서 소외되고 차별당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은 원래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책은 ‘십시일反’이라고 말을 바꿨다. 열 명이 모여 책 한 권으로 차별에 맞서겠다는 의도라 한다. 2002년 10명의 만화가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에 모여 설계한 책이다.
이 책에 참여한 작가들은 박재동, 손문상, 유승하, 이우일, 이희재, 장경섭, 조남준, 최호철, 홍승우, 홍윤표 등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들이다. 이들은 인권 문제에 관한 만화를 그리기 위해 각자 소재를 정해 조사와 취재 활동을 벌였다. 가끔 모여 서로 주제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목표를 확인했으며, 강의도 들으며 만화로 다듬어냈다.
책의 주제들은 사회계층, 빈부격차, 노동, 교육, 국제분쟁,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 소수자 등 차별과 인권침해에 관한 것들이다. 박재동은 ‘한 칸의 현실’에서 장애인, 교육, 이주노동자, 여성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때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이라크 전쟁 등 국제적인 사건들도 결국 차별의 한 모습이라고 강조한다. 손문상은 지역, 병역, 정규직, 조세 등 계층간의 차별을 전하고 있다.
이희재의 ‘첫발자국’은 한 장애 여학생이 학교에서 겪는 차별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잔잔한 필치로 그렸다. 일상 속에서 ‘이동’과 ‘교육’이라는 기본권이 어떻게 침해받고 있는지를 꼼꼼히 묘사했다. 조남준은 ‘누렁이’라는 소재로 아파트 평수에 따라 나눠지는 계층의 문제와, 가부장의 폭력을 가슴 아프도록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홍윤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화를 뒤집어봄으로써 편견의 싹을 찾는다. ‘미운 아기오리’에서는 왕따 문제를, ‘인어공주’에서는 장애인 문제를,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는 여성 문제를 이끌어낸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최호철의 <코리아 판타지>는 이주노동자들의 고단한 일상을 꼼꼼한 취재로 사실적으로 묘사해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만화가들의 톡톡 튀는 개성으로 그려내어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학생인권조례 제정 문제로 여론이 분분하다. 10명의 만화가들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그릴지 궁금하다.
임성미 독서교육전문가,〈오늘 읽은 책이 바로 네 미래다〉저자 /
이승이 한샘글로피아 대표
(중학생의 공부하는 힘 1318클래스(1318class.com)공동기획
12. 꽃들에게 희망을
13. 인권 변호사 조영래
14. 처절한 정원
■ 이 책, 알고 보면 재미있다! 작가 박상률은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전남대를 졸업했다. 1990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6년에는 ‘문학의 해 기념 불교문학상’ 희곡 부문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진도아리랑>을 비롯해 인물 이야기 <나비박사 석주명>, 장편소설 <봄바람> <나는 아름답다>, 동화 <바람으로 남은 엄마> <까치학교> <어른들만 사는 나라> 등이 있다. 내용 조영래는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고집이 세긴 했지만 순수하고 다소 엉뚱했다. 유지공장을 운영하던 부모님은 사업을 이어가기 힘들게 되자 서울로 이사를 온다. 그는 대학에 들어간 큰누나의 도움으로 학업에 열중해 당시로선 경쟁이 매우 치열했던 경기중학교에 입학한다. 좁은 집에서 지내기 갑갑해 집 뒤 절에 자주 놀러갔던 조영래는 그곳에서 스님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한문과 불경을 배운다. 스님들의 가르침은 중학생 조영래를 신중하면서도 확고한 주관과 이치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아이로 만드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 잠시 방황하던 그는 스님이 되겠다고 가출했다가 이내 돌아오기도 했다. 경기고에 들어간 조영래는 웅변반과 불교학생회, 농촌 연구반에서 활동하며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서울대 전체 수석으로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계속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다. 졸업 후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중 전태일 분신 사건이 일어나자, 그는 친구 장기표와 함께 전태일 장례식을 치르면서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깊이 생각하기 인물 이야기를 읽는 목적은 한 인물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와 그 인물이 추구했던 신념과 열정 등을 배우기 위해서다. 그럼 어떻게 읽어야 인물 이야기를 잘 읽는 걸까. 먼저 그 시대를 살펴야 한다. 조영래는 해방 후에 태어나 1980년대까지 살았다. 이 시기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심한 몸살을 앓았다. 다음은 인물의 성장환경이다. 조영래는 성실한 부모님과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자랐다. 공부를 열심히 해 대학에 들어간 누나들은 조영래의 지적 성장에 많은 도움을 줬다. 특히 사춘기 때 집 근처 절에서 스님에게 배운 한문과 불경은 조영래의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가 사회에 공헌한 점을 살펴보자. 그는 변호사가 되자마자 시민을 위한 법률상담소를 차렸는데, 그가 맡은 사건은 주로 힘없는 주민들과 여성,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망원동 수재 사건만 해도 주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영래는 꼼꼼하고 치밀한 준비로 승소해 새로운 시민운동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조영래를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당국이 사건을 은폐해 성고문 경찰관을 무죄 혐의로 풀어줬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제5공화국 정권이 막을 내린 뒤 경찰관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진실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인물의 시대와 성장환경, 업적을 알아보았다면 이번에는 인물이 어떻게 자신의 장점을 키워 스스로 성장했는지를 알아본다. 조영래는 적극적이고 활달했다. 선입견 없이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처지가 어려운 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수업료를 못 낸 친구를 대신해 자기 수업료를 낸 일도 그렇고, 전태일 사건이 났을 때 누구보다 앞장서 장례를 치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청소년 때부터 신문을 자주 보고 토론을 즐겼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경제학 공부를 열심히 했고, 신문읽기 모임을 했다. 책을 체계적으로 읽기 위해 독서계획표까지 짰다. 그가 인권변호사로 일하게 된 것은 감옥 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법을 잘 모르거나 잘못된 법으로 인해 죄수가 된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에게는 감옥도 또다른 ‘학교’였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목청만 높이는 변호사는 아니었다. 사건을 맡을 때마다 함께 일하는 다른 변호사들과 협력해 치밀하게 변론을 준비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파고드는 집중력 덕분에 그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 책 속에 나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아름다운 세상’ 꿈꾸며… 의사소통 능력 어떻게 기를까? “권양….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 온 국민이 그 이름은 모르는 채 그 성만으로 알고 있는 이름 없는 유명 인사, 얼굴 없는 우상이 되어버린 이 처녀는 누구인가.”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 조영래가 변론을 시작하면서 한 말이다. 이날 조영래는 ‘권양의 투쟁’을 상기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진실을 감옥에 가둘 수 없다던 그의 말대로 결국 이 사건은 군사정부의 부도덕성을 드러냈고 사람들의 분노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이 책 곳곳에 나와 있듯이 조영래는 대중을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그는 자상하고 따뜻한 감성으로 다른 사람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줄 알았고, 때로는 강한 설득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았다. 바쁜 변호사 일 중에도 잡지와 신문을 통해 언론 활동도 했다. 어떻게 하면 조영래처럼 다른 사람에게 자기 의견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대중 앞에서도 움츠리지 않고 말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의사소통의 시작은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는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한번 해 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별로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자신의 말투에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한 말을 녹음해 들어보는 것도 말투를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화를 나눌 화제를 고를 때는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 상대방의 관심사를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다음에 다시 대화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사람을 편안하게 바라보면서 말하는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반응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상대방이 하는 말에 흥미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한편, 듣다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은 물어본다. 이번에는 상대방이 느끼고 있는 감정에 호응해 주는 단계다. 감정에 호응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 표정이나 몸짓으로 긍정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고, “아, 그때 많이 속상했겠군요”라고 구체적으로 상대방이 느낀 감정을 읽어줄 수도 있다. 남의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분노나 실망, 좌절 등을 표현할 때는 ‘네’가 아닌 ‘나’를 주어로 하는 문장을 쓴다. 예를 들어 “넌 거짓말을 하고 있어”라고 말하지 말고 “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또 상대방의 잘못을 나무랄 때도 너무 다그치지 말고 출구를 열어두어야 한다. “네가 일부러 그랬지?”하는 것보다 “네가 나한테 나쁜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러 심리학자들이 쓴 책을 보면 의사소통 가운데 말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7%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93%는 말투, 태도, 자세, 시선 같은 말 이외의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투나 태도, 시선 등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평소 자신을 긍정하고 믿는 자존감이 그 바탕이 된다. 또 자기도 모르게 굳어버린 습관이 의사소통의 걸림돌이 된다. 결국 의사소통 능력도 노력을 통해 발달한다.
■ 나대로 책 읽기 ‘의료계의 조영래’가 되고 싶어요
강남중 2학년 문지혁
■ 내 꿈을 위해 한걸음 더
〈십시일反〉 박재동 외 9명/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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