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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박정희 유신체제 미화…친일파 행적은 대폭 축소

등록 2016-11-28 22:31수정 2016-11-29 00:11

새마을운동 자세히 담고
쿠데타 세력 ‘혁명 공약’ 실어
친일파 표현도 안 쓴 채
두루뭉술하게 행적 설명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28일 공개를 강행한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정희 정권의 ‘공’을 부풀리고 ‘과’를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친일파에 대한 서술도 기존 검정교과서보다 대폭 축소됐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사관도 그대로 담겼다. 이날 교육부는 중학교 <역사1> <역사2>, 고등학교 <한국사> 등 모두 3권의 국정 교과서를 공개했다.

■ 박정희 정권 미화로 가득 이날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박정희 체제’의 성과를 강조하는 데 무게를 뒀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 260~269쪽까지 무려 10쪽에 걸쳐 박정희 정권을 자세히 설명한다. “정부는 수출 진흥 확대회의를 매달 개최하여 수출 목표 달성 여부를 점검하는 등 수출 증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제1, 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기간에 수출은 연평균 36%로 급격히 늘어났다” 등과 같은 서술이 대표적이다. 특히, 중학교 <역사2>에는 박정희 정부가 1963년 제작해 배포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도표’까지 실었다. 이 도표에는 새로 건설될 철도와 도로, 분야별 주요 생산 목표, 보건 가족계획, 국토 건설 현황 등이 그림과 그래프로 표현돼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5·16 쿠데타 세력이 내세운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로 시작되는 6개 항목의 ‘혁명 공약’을 실었다.

‘새마을운동’도 자세히 담았다. 고교 <한국사> 268쪽에는 “유신 체제 유지에 이용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면서도 “새마을운동은 근면, 자조, 협동 정신을 강조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도로 및 하천 정비, 주택 개량 등 농촌 환경을 개선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13년 유네스코는 새마을운동 관련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라고 서술돼있다.

반면, 유신체제의 문제점은 짤막하게 서술하는 데 그쳤다. 고교 <한국사> 265쪽에는 ‘유신체제의 등장과 중화학 공업의 육성’이란 제목 아래에서 “유신헌법은 명목상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및 노동 3권 등 사회적 기본권 조항들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기본권들은 대통령의 긴급 조치에 의해 제한되었다”라고만 설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를 합리화하기 위한 서술도 다수 나타난다. 중학교 <역사>에서는 박정희 유신독재의 3선 개헌에 대해 설명하기 앞서 김신조 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주한미군 철수 등의 사례 등을 서술하며 “안보 위기가 계속됐다”고 기술해 마치 국가안보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이 3선 개헌을 했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도록 표현했다.

교육부는 ‘박정희 정권 미화’ 논란을 의식한 듯 “독재에 대해 분명히 서술하였다”며 “역사적 쟁점을 균형있게 담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 체제였다” 정도에 그쳤다. 정태헌 고려대 교수(한국사학)는 “정부가 ‘균형있는 역사서술을 했다’고 강변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업적을 10개 서술하면서 ‘과’는 하나만 드는 식의 기술은 균형잡힌 서술이 아니다”라며 “박근혜 정부가 그동안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일으키며 국정화를 추진한 의도가 결국 박정희 정권을 미화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게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 친일파 서술 대폭 축소 친일파에 대한 기술은 크게 줄어들었다. 중학교 <역사>에 등장하는 친일파에 대한 내용은 단 10줄에 불과하다. 친일 인사도 이광수, 노천명, 최린 등 단 3명만 실명을 들어 설명했다. 고교 <한국사>에서는 ‘친일파’라는 표현 대신 ‘친일 인사’ ‘친일 세력’으로 기술했다. 친일파의 친일 행적도 “이광수, 박영희, 최린, 윤치호, 한사룡, 박흥식 등 많은 지식인, 예술인, 종교인, 경제인이 친일 활동에 앞장섰다”고 기술하며 이들 저마다가 구체적으로 어떤 친일 행위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뭉뚱그려 “징병 권유, 친일 단체 좌담회 적극 참여” 등으로 설명했다.

현행 검정교과서(금성출판사)를 보면, 교과서 한 페이지에 걸쳐 ‘친일의 길을 걸은 변절자들’이란 제목으로 “이광수나 최남선과 같은 저명한 문인들은 조선 민중들에게 징병과 학도병에 지원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등 자신들의 문학적 재능을 조선 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게 하는 데 이용하였다.…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을 비롯한 친일 자본가들은 국방 헌금을 내거나 비행기와 무기를 구입하여 일본군에 헌납하였다” 등으로 친일 행적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놓았다. 또 검정교과서에는 “(친일파 가운데) 상당수는 (해방후) 반공을 전면에 내세우며 다시 등장하여 군과 경찰, 정계와 관계의 요직을 차지했다”는 비판적 서술이 등장하나 국정교과서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교육부가 28일 오전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과 편찬기준(안)을 언론에 배부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교육부가 28일 오전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과 편찬기준(안)을 언론에 배부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뉴라이트 사관 반영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신 ‘대한민국 수립’ 그동안 가장 쟁점이 돼온 1948년 8월15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됐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라는 표현은 ‘북한 정권 수립’으로 고쳤다. 이는 현행 헌법과 제헌헌법에 반영된 ‘1919년 건국, 1948년 정부 수립’의 통설을 부정하고 일부 뉴라이트 학자를 포함한 극우 진영이 주장하는 ‘1948년 건국론’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대한민국 수립’이란 기술은 1948년 이전의 임시정부와 항일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1919년이 아닌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보면, 일제강점기 시대 친일 부역자들의 친일행적은 건국 이전의 일이 돼 버린다”며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정권과 친일세력들에게 1948년 건국은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친재벌 서술 강화·노동운동 서술 축소 친기업적인 서술도 두드러졌다. 고교 <한국사> 267쪽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이 서술돼 있다. 이병철 삼성 회장에 대해서는 “1980년대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여 한국이 정보산업 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쓰고, 정주영 현대 회장에 대해서는 “대규모 조선소 건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영국 투자 은행에 보여주며 ‘우리는 이미 1500년대에 철갑선을 만들었다’라고 설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역사 교과서에 전태일에 관한 내용은 있고, 이병철, 정주영 회장 등 기업가는 없느냐’고 주장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와 뉴라이트 계열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전태일 분신 사건은 본문에 “전태일 분신 사건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주목받고 사회 문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간략하게 언급돼있고, 구체적인 내용은 사진설명으로 처리했다.

■ 대결적 남북 관계 서술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대결적인 역사 서술이 강화됐다. 북한의 3대 세습 체제와 북한 인권 문제를 소주제로 편성해 서술하고,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도발사건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남북 대화가 중단된 것과 관련해서 “북한의 끊임없는 대남 도발은 남북 대화 추진 및 교류 협력을 증대하기 위한 노력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전적으로 북한 쪽에 책임을 돌렸다.

김태웅 서울대 교수(역사교육과)는 “정부가 사상과 역사관을 독점하고 역사인식을 획일화하려는 국정화로는 제대로된 역사 교과서가 절대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이번 국정화 시도를 통해 재확인됐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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