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 교육부 차관이 3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링핑실에서 국정역사교과서 최종본을 발표하고 있다. 세종/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교육부는 31일 국정교과서 최종본과 함께 내년 국·검정 교과서 혼용이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앞으로 1년 안에 개발해야 할 새 검정교과서의 집필기준을 공개했다. 그동안 논란이 돼 온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 대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쓸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이와 관련된 교육과정은 그대로 나둬 내년 국·검정 혼용을 진행하기 위한 ‘편법 꼼수 처방’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교육부가 공개한 ‘역사과 검정 도서 집필기준’을 보면, 2015 역사과 교육과정과 국정교과서 편찬기준에서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쓰도록 강제했던 것과 달리, 검정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도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 8·15 광복 이후 교과서 서술 부분 가운데 ‘집필 유의점’으로 “대한민국 출범에 대해 ‘대한민국 수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견해가 있음에 유의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기존 방침에서 한발 물러난 것이다. ‘대한민국 수립’은 뉴라이트 계열의 ‘건국절 사관’이 반영된 표현으로 많은 역사학자·역사교사들이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대한민국 수립’을 명시한 2015 교육과정은 수정하지 않았다. 금용한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장은 “교육과정에 명시된 그 내용(‘대한민국 수립’)은 3·1운동 등을 통해 대한민국이 수립됐다는 큰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라며 “1948년 8월15일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수립이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든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2015 교육과정 수정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부의 이날 발표에 대해 불과 두달만에 입장을 정반대로 바꾼 ‘오락가락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이 맞지 않고, 교과서마다 다른 표현이 쓰일 수 있는 등 학교현장의 혼란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재작년 2015 교육과정 개정 이후 꾸준히 ‘대한민국 수립’을 강제해왔다. 지난해 11월28일 현장검토본을 공개할 때도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대한민국 수립’은 국가 정통성을 강조한 표현”이라고 강변했다.
교육부의 이런 입장 변경은 최근 기존 검정교과서 집필진이 집필거부 선언을 이어가자, 2018년 국·검정 혼용 방침에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해 검정 집필진 저항이 가장 큰 ‘대한민국 수립’ 부문만 완화해 집필 유도를 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교육부는 이와 함께 근·현대사 내용이 포함된 중학교 <역사2>의 검정심사를 올해에서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다. 금용한 단장은 “기존에는 <역사1>과 <역사2>를 한꺼번에 개발하도록 했으나 집필 기간이 짧은 부분을 고려해 <역사2>를 내년에 개발하도록 융통성 있게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정교과서가 ‘유사 국정교과서’가 될 것이란 우려는 여전하다. 대부분의 집필기준이 국정교과서의 편찬기준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을 미화한 토대가 된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계획을 기반으로 이룩한 경제 발전의 과정과 그 성과를 시기별로 서술한다” “경제 성장으로 인한 성과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균형 있게 서술되도록 유의한다” 등의 집필방향과 집필 유의점이 대표적이다.
세종/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