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산업노조 전북지역본부가 18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아파도 인력이 부족해서 병가를 내지 못하고 다시 일하러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동안 의료인을 늘리자는 캠페인을 했지만, (이제) 모두가 저희를 잊었어요. 저희는 작년과 똑같이 일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이 저희를 잊었어요. 그게 많이 슬퍼요.” (감염격리병동 간호사 ㄱ씨)
“(인력이 부족해) 마감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중환자들을 돌보고 나면 신발에 찰랑거릴 정도로 땀을 흘리고 나와요. 상태가 나빠지는 중환자들을 보는 것도 정말 힘이 듭니다.” (코로나19 전담병원 간호사 ㄴ씨)
18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은 간호사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기자회견장을 가득 메웠다. 간호사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은 “10%도 안되는 공공병원이 80%가 넘는 코로나19 환자를 담당하고 있지만 개선 대책은 제자리 걸음”이라고 호소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공공의료·의료인력 확충, 처우 개선’이라는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총파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은 전국 11개 지역본부에서 동시에 이뤄졌다.
보건의료노조는 “15일간의 쟁의조정기간 내에 타결되지 않으면 다음달 2일 보건의료노조 8만 조합원은 전면 총파업투쟁과 공동행동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보건의료노조 124개 지부(136개 의료기관) 5만6000명은 노동위원회에 동시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보건의료노조는 124개 지부가 동시에 쟁의조정신청서를 접수한 것은 2004년 총파업 이후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코로나 시기 웬 파업이냐며 우려 많이 하실 것이라 예상한다”며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대응에 인력을 갈아넣는 방식으로 가서는 더이상 안된다. ‘위드 코로나’ 시기에는 보건의료인력, 공공의료인력 확충 없이 우리 사회가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와 사용자가 자신들의 요구에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지난 5월말부터 최근까지 대정부·사용자교섭을 진행해왔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조는 “정당한 보상과 처우 개선에 대한 요구에 사용자 쪽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핑계를 대며 시간만 끈다”며 “보건복지부는 ‘취지는 공감한다’면서도 검토하겠다며 유보적 태도로 일관해 지난 2달 반 동안 노정교섭에 실질적인 진전이 없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11년차 간호사 ㄷ씨는 “후배들이 떠나는데 지금 상황에서 돌아서는 그들을 어떤 말로 설득해야 할지 정부가 답해달라”고 울먹였다.
이들은 코로나 장기전 준비, 방역대책 전환을 위한 8대 요구안을 밝혔다. 노조는 공공의료 확충·강화를 위해 △조속한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전국 70개 중진료권마다 1곳씩 공공의료 확충 △공공병원 시설·장비·인력 인프라 구축, 공익적 적자 해소 등을 요구했다. 또 보건의료인력 확충·처우개선을 위해 △직종별 적정인력기준 마련 및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교육전담간호사 지원제도 전면 확대 △5대 불법의료(대리처방, 동의서, 처치·시술, 수술, 조제) 근절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위한 의료기관 평가기준 강화 △의사인력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노조는 “총파업이 현실화되기 전 보건복지부와 노정교섭을 꾸준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브리핑을 통해 “정부에서는 코로나를 진료하는 데 있어서 인력기준을 지금 마련 중에 있다. 공공의료 확충 부분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방향을 가지고 노조와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인력수급을 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좀 있다는 것 양해해달라”며 “파업이 진행되지 않도록 노조와 함께 최선을 다해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주빈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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