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 이은주 원내수석부대표, 장혜영 의원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강행처리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 절차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여당이 오는 25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처리를 예고한 가운데, 법학 교수와 진보적 변호사 단체 등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 개정 취지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언론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충분한 사전 논의 없는 입법 속도전이 정략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 100여개 대학의 법학 교수들로 꾸려진 한국법학교수회는 23일 오후 의견문을 내어 “언론기관의 법적인 책임을 환기하고, 언론중재위원회의 역할을 정비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신중하게 개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언론중재법은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법률”이라며 “언론 등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우는 개정안은 언론중재법의 목적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과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 도입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허위·조작 보도에 따른 손해배상은 ‘가해한 만큼 손해를 배상한다’는 현행법상 ‘전보배상’의 법리를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개정안에는 언론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이날 성명을 내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정보도의 실효성 강화 및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 등 언론피해에 대한 구제 강화를 도모하는 개정 법안의 취지와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더불어민주당의 유례 없는 입법 속도전으로 국민의 여론 수렴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반면에, 가짜뉴스 피해구제법이라는 민주당의 자평이 더해지면서, 언론피해 구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번 법안의 취지가 오해받고 퇴색될 것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개정안이 언론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민변은 “(개정안) 세부 내용 중 징벌적 손해배상에 있어 고의, 중과실 사유를 예시 또는 열거하여 추정하는 형태는 이미 제도가 도입된 다른 법률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라며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진실한 것이거나 진실하다고 믿는 데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 보도를 면책하는 언론의 자유 보장 방안과 어긋나는 점에서 언론의 자유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짚었다.
민변은 야당과 언론 단체를 향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들은 “야당과 언론 단체들도 언론피해 구제 강화라는 이번 법안의 기본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막연히 민주당의 개정 법안을 비판만 하기보다는, 사회적 논의가 가능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책임 있는 입법 대안과 논의 및 의결 일정 등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정치권의 신중한 논의를 당부했다. 경실련은 이날 의견문을 내어 “이번 개정안은 명백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가짜뉴스를 생산하거나 조작하여 발생한 언론보도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본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강화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면서도 “언론에 입증책임을 지우기 위한 고의∙중과실 추정요건이 불명확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건에서 경험하였듯 거대한 실체는 조그만 의혹에서 단서가 드러나고 진실을 밝히려는 자들의 노력으로 규명된다”며 “이 법으로 거악이 존재함에도 일정한 사실에 접근하지 못한 의혹들이 묻힐 것은 자명하고 특히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 개입된 의혹의 경우 더욱 진실이 묻힐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의 신중한 입법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