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주변에서 아프가니스탄 한국 협력자들 구출을 호소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법무부가 국내에 머물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 대해 인도적 체류 허가를 검토하고 있다. 난민을 지원하는 인권단체와 인권 변호사들은 정부의 인도적 체류 검토가 “최소한의 소극적 조치”라며 보다 적극적으로 아프간인의 인권보호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4일 오전 법무부 과천청사로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미얀마 사태 때도 특별체류를 허가하는 기준들이 있었는데, 국내에 체류 중인 아프간인들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 2월 미얀마에서의 군부 쿠데타 이후 국내에 체류 중인 미얀마인 2만5천여명에 대해 ‘인도적 체류’를 허가한 바 있다.
난민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인도적 체류는 난민협약이나 난민법에 따른 ‘난민의 정의’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난민신청자의 고국 상황을 미뤄볼 때 고문이나 처벌 등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가 침해당할 수 있다고 인정될 때 법무부 장관이 주는 체류 자격의 일종이다. 2018년 500여명의 예멘인이 제주도에 와 난민신청을 했을 때 한국은 2명을 제외한 대부분에게 인도적 체류 지위를 부여했다. 2020년 말 기준 한국에는 2370명의 인도적 체류자가 있는데 이 중 1231명은 시리아인이고, 757명은 예멘인이다. 두 국가 출신이 전체 인도적 체류자의 83.9%를 차지한다.
정부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고려해 인도적인 대책을 마련한다고 설명했지만 난민지위가 아닌 인도적 체류지위로는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에 한계가 많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인도적 체류자(G-1-6 비자)는 체류자격외활동허가를 받아서 노동을 할 수 있는데 단순노무직으로만 취업이 제한돼 있다. 고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에 상관 없이 농어업이나 건설업 등에서만 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인도적 체류자들 사이에선 ‘비인도적인 인도적 체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수도권의 한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아프간인 ㄱ은 “한국에서 난민신청자가 되거나 인도적 체류지위를 받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난민신청은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니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인도적 체류자에게는 난민 인정자와 달리 가족결합이나 혼인이 허락되지 않는다. 아프간 현지 혹은 한국에서 한국 정부에 조력한 사람들은 가족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 있지만 인도적 체류자는 아프간에서 가족을 데려올 수 없다. 인도적 체류자는 한국에서 법적으로 혼인을 할 수도 없다. 시리아인 ㄴ은 “언어나 문화 등 정착과 관련된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해결이 됐으나, 10년 가까이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젊은이들이 결혼도 하지 못하고 나이만 들어가는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2년 내전이 발발한 직후 한국으로 넘어와 난민신청을 한 시리아인들은 한국에 정착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인도적 체류지위는 당사자를 추방하지 않고 정말 살 수 있게만 해주는 체류자격인데, 정부가 이처럼 비인도적인 인도적 체류지위를 내세워 소극적으로 선을 긋는 모양새”라며 “아프간에서 데려올 수도 있는 아프간인과 국내 체류자에 대해선 난민 인정자에 준하는 체류지위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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