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민·관·군 합동위원회 군 사법제도 개선 분과 위원장이 2021년 8월31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군 성범죄 사건의 수사와 재판을 민간으로 옮기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성추행 피해를 입은 공군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102일 만이다. 2013년 육군, 2017년 해군, 2021년 공군과 해군까지 성폭력 피해자의 사망 사건이 왜 해마다 반복되는지에 대한 뒤늦은 반성문이다. 그러나 ‘반쪽짜리’ 반성문이라는 비판이 많다. 수사·기소·재판을 포괄하는 군 사법제도가 성폭력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공감대에 발 디뎌 어렵게 이뤄진 법 개정이건만 내용은 ‘누더기’, 절차는 ‘보여주기식’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민·관·군 합동위원회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2021년 6월28일 출범한 병영혁신기구다. 변호사·교수·활동가 등 위원 80명(민간위원 63.4%)이 성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2분과), 사법제도 개선(4분과), 장병 인권 보호(1분과), 생활 개선(3분과) 등 4개 분과를 구성한다. 국방부는 민간위원들의 높은 비율을 내세우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에 기반을 둔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평시 군사법원을 폐지하자는 합동위 권고는 이번 군사법원법 개정안에 반영되지 않았고 위원 15명도 줄줄이 사퇴했다.
8월31일 민·관·군 합동위원회의 김종대 군 사법제도 개선 분과 위원장(전 정의당 의원)을 서울 서대문구 김대중도서관에서 만났다. 김종대 위원장은 청와대비서실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병영문화혁신위원회 위원,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거친 군사안보 전문가다.
ㅡ성추행으로 인해 공군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게 5월이다. 그로부터 석 달 만에 군사법원법이 개정됐다.
군 사법제도 개혁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는데 지금까지 한 게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니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정치적 일정이 고려돼서 서두른 감이 있다. 불행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제도로 응답해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 병영혁신기구가 가동 중이고 아직 논의도 활발한데 국회가 서둘러 의결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ㅡ개정된 군사법원법, 어떻게 평가하나.
1심과 2심은 사실심이고 3심은 법률심이다. 제일 중요한 게 (사실관계를 따지는) 1심이다. 이 사실심을 쪼개서 한 발(1심)은 군사법원에, 또 한 발(2심)은 민간법원에 두겠다는 건 문제다. 나아가 성범죄, 군인 사망 사건 관련 범죄, 입대 전 범죄는 1심부터 민간으로 다 넘긴다는데, 이 세 가지 범죄와 군사범죄 양쪽 다 걸쳐 있는 사건도 많기 때문에 이를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탈영하면서 성폭력을 저지르거나, 상관 모욕과 사망이 함께 발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공군 성폭력 사망과 유사한 사건이 또 발생한다면 군이 수사와 재판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다. 공군 성폭력 사망 사건이나 해군 성폭력 사망 사건 모두 유서가 없었다. 성폭력으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사건 초기에 드러나지 않으면 일반 변사 사건으로 처리돼 군에서 맡게 된다. 국회 회의록을 봐도 이 부분이 제대로 심사되지 않았다.
육군 28사단 윤일병 사망 사건 관련 재판이 열린 2014년 8월5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28사단 군사법원. <한겨레> 김태형 기자
군사법원법 개정안은 사건을 쪼개고 쪼개 군사법원의 재판 관할권을 축소하는 게 골자다. 군내 범죄나 입대 전 범죄의 1·2심 모두 군사법원에서 처리하던 종전과 다르게, 성범죄, 군인 사망 사건 관련 범죄, 입대 전 저지른 범죄는 수사와 기소, 재판까지 민간법원으로 옮기고 고등군사법원은 아예 폐지한다. 앞선 세 가지 범죄를 제외한 비군사범죄(폭행, 음주운전 등)와 군사범죄(군사기밀 유출, 군사반란 등)는 1심은 군사법원, 2심은 서울고법이 맡는다. 군 지휘관의 수사나 재판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법조인이 아닌 일반 장교를 재판관으로 세우는 심판관 제도와 형량 감경이 가능한 관할관 제도가 폐지됐다. 부대장의 구속영장청구 승인권도 없앴다. 제도 정비 기간을 고려해 2022년 7월부터 시행된다.
한발 진전됐다는 평가와 함께, 평시 군사법원만은 폐지할 수 없다는 군의 굳은 의지가 관철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평시 군사법원 폐지는 행정권과 사법권 모두를 쥐고 있는 군 사법제도 개혁의 핵심으로 꼽혔다. 2019년 보통군사법원에 접수된 1심 사건 중 군사범죄는 2019년 228건(8.1%)에 그치고 나머지는 성범죄·폭력·교통 같은 일반 사건으로 집계됐다.1 그러나 폐쇄적인 분위기 아래 지휘관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군사법원은 노무현 정권 때부터 폐지 논의가 시작됐다. 중지는 모아졌다. 장군을 제외한 시민과 병사, 일반 간부 모두 자신이 군인에게서 범죄를 당했다면 ‘민간에서 수사와 재판을 맡기 바란다’는 응답 비율이 ‘군에서 맡기를 바란다’는 응답 비율보다 높았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2
그러나 개정된 군사법원법은 평시 군사법원 폐지를 담지 못했고, 한 세트로 묶일 수사기관 개선은 본격적으로 손도 못 댔다는 지적이 나온다. “혼란이 우려된다. 그래서 4분과에서 쪼개려면 평시와 전시로 쪼개서 접근하는 게 맞다고, 평시 군사법원을 없애자고 의결한 것이다.”(김종대 위원장)
8월18일 김종대 위원장이 이끄는 민·관·군 합동위원회 4분과는 평시 군사법원 폐지를 골자로 한 군 사법제도 개선안을 의결했다. 민간위원 만장일치였다. 분과 결의가 합동위원회 정식 권고로 효력이 있으려면 전체회의에서 의결돼야 한다. 그러나 전체회의가 열리기 전인 8월24일 평시 군사법원 폐지가 빠진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8월26일에야 서면 결의로 합동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뒷북 권고’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 현재에 이르렀다.
합동위는 국방부의 ‘실무적 지원’과 ‘실질적 방해’를 동시에 받은 것으로 보인다. 8월18일 4분과의 한발 나아간 개선안 결의에도 국방부는 결의 내용은 물론 4분과 개최 사실도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국방부의 8월20일 국회 보고자료는 마치 4분과가 군사법원 존치를 주장하는 것으로 그 취지를 완전히 왜곡했다. 4분과에서 평시 군사법원 문제에 대해 “폐지될 경우 우려사항에 대한 검토”가 이뤄졌다고 정반대로 보고한 것이다.
ㅡ평시 군사법원 폐지를 의결해놓고도 법 개정에는 반영이 안 됐는데.
4분과위 의결의 의미가 많이 반감된 건 사실이다. 군대·학교·종교집단·대기업 등 집단은 다 자기들이 특수하다고 주장하며, 이런 예외주의적 시각이 사법의 정통성을 훼손해왔다. 군도 그 특수성을 들어 국가 사법체계와 다른 세계에 살아왔다. 범죄와 폭력은 그런 특수성의 논리를 먹고 산다. 국방부 반대 탓에 국회는 평시 군사법원 폐지는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ㅡ군이 평시 군사법원 폐지에 이렇게까지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군 지휘관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몇 가지 논거가 있는데 모두 반박 가능하다.
①전시에 갑자기 법원을 설치하는 건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많은 나라가 평시 군사법원이 없는 상태지만 전시 전환에 필요한 제도와 절차를 마련해 대비하고 있다. 일반법원에 가정법원, 행정법원처럼 군사사건을 다루는 특별법원을 두고, 평시에는 전시 전환 훈련(충무계획)을 철저히 하면 된다.
②아프가니스탄 사태처럼 전시와 평시를 구분할 수 없는 회색지대가 넓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건 군사법원보다 전쟁법이나 교전규칙을 연구해서 지휘관에 필요한 조언을 하는 군 법무장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③지휘관의 지휘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관할관, 심판관 제도는 이미 사문화된 칼집 속의 칼이어도, 그 칼이라도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그러나 이미 지휘권 확립과 군기 유지를 위한 인사권과 징계권이 있다.
ㅡ국방부가 분과 의견을 왜곡 보고한 사건은 노골적인 방해 아닌가. 왜곡 보고를 비판하는 입장문도 8월23일 발표했는데.
그 업무보고를 누가 썼는지 추적했더니 합동위원회 실무지원 태스크포스(TF) 실무자가 국방부에 작성해 보낸 거더라. 실무지원 TF는 군인과 공무원으로 이뤄져 있는데, 평시 군사법원 폐지에 반대하는 군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바로 시정 조처와 국회 수정 보고를 요구했다. 군의 입장은 다 결정돼 있었고, 국방부로서는 합동위 따로, 국회 가서 따로 설명하는 격이 돼버렸다. 그런 과정이 위원 줄사퇴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우리나라와 달리 많은 국가에 평시 군사법원이 없다. 독일은 군인의 형사상 범법행위 재판을 민간에서 맡고 군내 군무법원은 경미한 위법행위에 대한 징계재판만 맡는다. 별도의 군검찰 조직도 없다. 2013년 홍중추 하사 사망 사건을 겪은 대만은 평시 군사법원과 군검찰 운영을 중단하고 관련 업무를 모두 민간법원과 검찰로 이관했다.3
그럼에도 군 수뇌부가 사법권을 군 기강이나 지휘권과 대치해 바라보기 때문에 평시 군사법원을 못 놔주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군사법원이 조직을 보위하는 역할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군 사건 법률 시장이다. 군 법무관이 퇴역한 뒤 군 사건만 전문으로 맡는 법무법인으로 옮기는데 그들이 개혁 저항의 뒷배라는 의심이다. 군 사건을 일반법원에서 다룬다면 군사법원에서 맺었던 인연을 자산으로 삼는 군 법무관 출신 법조인이 갖는 이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해군 성폭력 사망 사건까지 발생하자, 8월17일 민간위원 요청으로 긴급 임시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지휘부 일부는 출석하지 않았고 수사 중인 사안이라 대답할 수 없다는 답변이 반복했다고 한다. △국방부의 왜곡 보고 △누더기 합의안의 국회 법사위 통과 △전체회의의 뒤늦은 권고까지 이어지다보니, 이런 곡절마다 직을 던지면서 사퇴한 위원만 15명으로 늘었다. 그중 4분과가 6명이다. “두 사람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모습으로 사건을 대하는 국방부의 태도를 접하며 위원회를 통한 개혁에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2021년 8월25일 사퇴 위원 6인의 입장문)4
<한겨레21>은 사퇴한 의원 15명 가운데 5명과 통화했다. 이들은 애초 국방부에 군 개혁 의지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할 일이 군 사법제도 개혁이었는데, 누더기 합의안이 통과되면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4분과 위원) “사망 사건을 계기로 생긴 위원회로 민간과 함께 시너지 내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데 기존의 군 지휘체계를 넘어서는 개혁안은 받지 않겠다는 태도가 확실했다.”(2분과 위원)
김 위원장은 생각이 다르다고 했다. 군의 ‘태생적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사에 독이 있고 독수리에 발톱이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런 공격성을 어떻게 중화하고 길들일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 위원회는 위원회의 길을 가면서 국방부도 어쩔 수 없이 따라오게끔 조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를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게 중요한데 그 자체가 분란의 원인이 돼 갈등이 폭발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ㅡ하지만 결국 ‘합동위의 길’이라는 것도 국방부에 제도 개혁안을 관철하는 것 아닌가. 합동위의 길이라는 게 무엇인가.
우리는 실행 부서가 아니다. 실행 계획을 짜고 약속받고 권고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다. 큰 제도 개혁이 전부가 아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법 개정 외에 국방부 내규나 훈령 차원에서도 할 일이 많다. 예를 들어 수사·기소 단계에서 합의를 폭넓게 인정해온 문제나, 가해자에 대한 탄원서를 종용하는 문제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 권고안을 전체회의에서 의결했다. 권고안이지만 국방부가 참여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실행해야 한다.
민·관·군 합동위는 9월 합동위 활동 종료를 앞두고 대국민보고를 열 예정이다. 그때까지 김 위원장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던져주는 ‘메시지’에 대한 우려와 의지를 밝혔다. “성폭력 사건을 신고했을 때 어떤 일을 겪는지, 한국군이 지금까지 어떤 메시지를 던져줬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피해자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가해자는 군복을 벗더라도 끝까지 추적해 잡아낸다’는 의지로 피해자를 안심시켜야 한다. 그런 긍정적인 메시지를 줘야 한다. 그게 남은 우리가 할 일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참고 문헌
1. ‘형사사법기관의 인권보장역량 종합평가 연구: 형사법원의 인권보장역량 평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남대 법학연구소, 군인권센터, 2020년
2. 국방부가 한국국방연구원 등을 통해 2021년 7~8월 초 국민 1천 명·병사 1366명·간부 1440명·장군 186명 등 2992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3. 군 사법제도 개선논의 및 향후과제, 국회입법조사처, 2020년 1월
4. ‘더 이상 국방부에 개혁을 맡길 수 없습니다’, 국방부 민·관·군 합동위원 강태경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김주원 육군훈련소대신전해드립니다 운영자,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 성창익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외 1인의 변호사, 2021년 8월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