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없는 집에 미성년 자녀의 승낙만으로 집을 드나든 이를 주거침입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지난 20일 나온 가운데, 주거침입 성립 여부를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보도한 기사 댓글에는 ‘어린아이를 속여 집에 들어가도 주거침입이 아닌가’, ‘초등학생이 문을 열어줘도 주거침입이 아닌가’ 등의 반응이 많았습니다. 부모의 뜻과 달리, 어린아이가 문을 열어준 집에 드나든 이를 주거침입으로 처벌할 수 없는 걸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 미성년자라도 나이가 어린 초등학생이나, 성인이라도 장애가 있는 경우, ‘출입을 승낙’했더라도 법원에서 의사능력을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법원에서는 당시 상황을 따져 의사를 표시하거나 행위를 한 사람이 법률적 의미와 효과를 이해할 수 있는 의사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경우, 그 행위나 의사가 무효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20일 대법원이 판결한 사건의 미성년자는 사건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성년자이지만 연령대가 낮지 않다 보니 법원에서 그의 의사능력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1·2심 판결문에도 의사능력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습니다.
대법원은 지난 9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37년 만에
주거침입죄 관련 판례를 바꿨습니다. 집에 없는 사람의 ‘추정적 의사’를 고려해 주거침입 여부를 판단했던 과거와 달리, 배우자 등 현재 주거지에 있는 이의 현실적 승낙을 받아 출입문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드나들었다면 주거침입으로 볼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검찰은 결혼해 남편이 있는 여성의 허락을 받고 집에 드나든 내연 상대에게 주거침입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는데, 대법원은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다만, 대법원은 출입을 허락하는 이의 나이 등에 대해선 따로 판단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판례가 변경된 지 얼마 안 돼 아직 의사능력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며 “판례가 더 쌓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법조계 일각에선 변경된 판례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최정규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출입을 승낙’했을 당시 아동이나 장애인 등이 놓인 상황이나 의사능력에 대한 개별적·구체적 사정을 꼼꼼하게 따져야 하는데, 바뀐 판례에 따라 ‘승낙해 문을 열어줬으니 주거침입 성립이 안 된다’는 식으로 쉽게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주거침입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대응할까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장애인권법센터의 김예원 변호사는 “주거침입 여부 판단에 있어 당사자 의사와 심리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진술조력인(성폭력범죄 등을 입은 아동·장애인이 수사기관 조사를 받거나 법정 증언을 할 때 소통을 돕는 전문가) 제도 등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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