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한 것을 두고 “촛불 정신을 훼손한 정치적 사면”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 통합을 내세운 사면이 되레 국민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면은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법률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사면권이 제한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복권하는 배경으로 ‘대국민 화합’을 들었다.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딛고 온 국민이 대화합을 이뤄, 통합된 힘으로 코로나19 확산과 그로 인한 범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 및 복권”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헌법학자들은 전제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을 부정하고 국정농단을 일삼은 대통령이 어떻게 국민통합의 도구가 될 수 있겠는가”라며 “국민통합을 내세우기 위해선 자유, 평등, 민주화 등 통합의 방향이 있어야 하지만, 이번 사면은 어떠한 방향성도 찾아볼 수 없다. 대선을 앞둔 표 계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전두환씨도 ‘국민 통합’ 명분으로 사면을 받았지만, 5·18 유가족들에 대해 사과를 한 적도 없고, 도리어 국론만 분열시켰다”며 “박 전 대통령도 국정농단에 대해 반성이나 사과가 없다. 전씨 경우처럼 앞으로 어느 시점에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하고 지지자들이 동조하면서 국론이 분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사면을 두고 ‘촛불 정신 훼손’이라는 비판도 강하게 제기된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어 “박근혜의 탄핵과 사법처리는 촛불 시민들의 힘으로 이뤄진 것으로 대통령의 정치적 사면은 촛불 시민들의 의사에 반한다”며 “사회적 통합과는 거리가 멀고,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고려에 따른 사면이다”라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도 “‘촛불정부’를 자임하며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배신했다”며 “문 대통령은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를 저지른 인사의 사면은 배제한다는 원칙을 스스로 어기면서 대통령의 지위를 남용해 독재적으로 사면권을 행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했다”이라고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이 갑작스럽게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한상희 교수는 “국민들의 힘으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끌어내고 결국 사법처리로까지 이어졌는데, 그것을 대통령 한 사람이 어떠한 의견 수렴 절차 없이 뒤집은 것은 대통령 권한의 명백한 남용”이라고 말했다. 민변도 “헌정질서를 파괴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법적 안정성을 위해 사면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임지봉 교수는 “사면권은 헌법이 대통령에 부여한 권한이지만 남용될 경우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사법부 결정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김남근 민변 개혁입법특위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이 건강상 문제가 있다면 형집행정지를 하면 된다”며 “사면을 한 것을 대선을 고려한 정치공학적 계산이 깔린 것이다. 문 대통령은 사면권을 남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도 입장문을 내어 “5대 부패범죄에 대한 사면권 제한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며 “박근혜 구속은 단지 한 사람의 중대범죄자를 처벌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 시민들이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수립한 역사적 분기점으로 적어도 촛불로 당선된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해서는 결코 안 될 사안”이라고 밝혔다.
김윤주 강재구 전광준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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