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회 내용은…
언론사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입사해 ‘장 차장’이 된 장 기자. 그 세계엔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도 팔 수 있는 땅이라며 당당하게 영업하자는 이들이 있다. 땅도 ‘당당’해보였다. 길도 없는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임야가 “지대가 높아 홍수가 와도 안정적이고 농작물 수입이 없기에 세금이 적고 흙을 파 팔 수도 있다”고 홍보되고 있었다. 부동사 기획자들은 우리가 파는 땅이 “가수 태연 가족이 산 땅보다 좋은 땅”이라며 유혹과 압박을 병행했다. 신입들은 그 말들을 적고, 새겨 영업에 활용해야 했다. 다만 다단계 판매방식으로, 본인들도 결국 사도록 떠밀려야 했다. 다단계로 땅을 거래해도 괜찮을까.
대부분의 기획부동산 업체는 기본급과 각종 복리후생 등을 미끼로 사람들을 모집해 사실상 불법 다단계 영업을 하고 있다. 신입 직원에게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피하고자 ‘사업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는데, 실제 계약서 내용과 업무 방식을 보면 근로기준법상 위법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획부동산 ㅎ사는 면접을 통과한 지원자들에게 ‘근로계약서’ 대신 ‘사업계약서’와 사업규칙, 이행각서 등을 내밀며 서명을 요구했다. 채용 공고에는 ‘기본급 월180만(실적 상관없이 무조건 지급)’이라고 적시돼 있지만, 신입 차장이 서명해야 하는 사업계약서에는 ‘기본급’이 ‘업무보조금’이라는 용어로 대체돼 있고 정해진 액수 또한 명시돼 있지 않다.
막상 신입 차장들은 모두 사업계약서에 명시된 근무시간(10:00~16:00) 동안 정해진 장소에서 일하고, 임원·부장들한테 ‘단계별 통화’ 방법 등을 배워 영업에 나선다. 구체적인 업무 지휘와 감독을 받는 셈이다. 대법원은 2006년 판례를 통해 △기본급이 정해져 있고 사용자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고 △근무 시간·장소가 지정되고 근로자가 이를 따라야 하는 등의 조건이 갖춰지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고 있다. 법률사무소 지담 유은수 노무사는 “채용 공고 및 사업계약서와 실제 근무한 사람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ㅎ사 차장들은 고용노동부나 법원으로부터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차장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는다면, 35~40여명의 직원들이 상주하는 5인 이상 사업장인 ㅎ사는 근로기준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다. 사업계약서 ‘제1조 1항’은 “갑의 형편이나 방침에 따라 계약 해지할 수 있다”인데 이를 근거로 임의·자의적으로 해고할 경우 위법하다. 5인 이상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해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계약 후 실업무일 10일을 교육기간으로 정하며, 이 기간 내 계약 해지 시에는 업무보조금(3만원)을 지급하지 않는다”(제3조 3항), “퇴사시 실근무일수(의) 60%(만) 지급한다”(제5조 3항) 등의 조항은 임금체불에 해당한다. 유 노무사는 “수습기간에도 최소한 최저임금의 90% 이상은 지급해야 한다. 언제 퇴사를 해도 근무한 날과 시간에 대해서는 임금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 사용자 마음대로 공제하면 근로기준법 43조 위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ㅎ사처럼 직급을 차장, 부장, 임원 등으로 구분해 상품 계약 건수당 직급별로 수수료를 챙기는 회사는 ‘다단계 판매업자’로 공정거래위원회나 관할 관청에 등록해야 한다. 문제는 ‘토지’의 경우 다단계 판매업자가 취급할 수 있는 재화와 용역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다단계 판매 상품은 가격이 160만원을 초과할 수 없다. 그래서 해당 영업 방식의 기획부동산들은 관할 관청 등록 요건인 ‘직접판매·특수판매 공제조합 가입’도 하지 않은 불법 다단계 영업자일 수밖에 없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58조는 미등록 다단계 판매업자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방문판매법 위반을 입증하려면 실제 거래 내역으로 수당 지급 체계를 확인해야 하는데, 여건상 이를 다 밝히긴 쉽지 않아 경찰은 사기 혐의 입증에 주력한다”며 “강남에 기획부동산 업체들이 많지만 영업신고도 하지 않다보니 여러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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