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⑪]더탐사 후기 ‘소설’ 같은 현실…기획부동산 음성파일 공개 기자도 흔들린 ‘가난한 욕망’ 기획의 시작
게티이미지뱅크
“선배, 여기 생각보다 괜찮은 회사 같습니다.”
‘거짓말도 100번을 말하면 진실이 된다’고 했던가. 기획부동산에서는 거짓말이 진실이 되는 데까지 나흘이면 족했다. ‘장 차장’이 되어 ㅎ사에 입사한 지 나흘째 되던 지난해 11월1일, 점심을 앞두고 편집국 탐사기획팀 선배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그때 “며칠만 더 다녀보고 결정하자”는 지시가 없었다면, ‘부동산 기획자’들의 실상을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이미 마음 한켠에서 욕망이 들어차기 시작한 것이다. 사방에서 개발 호재를 읊어대는 목소리와 각종 보도자료, 신문 기사에 눈과 귀가 포위되니 “우리 회사는 다르다”는 담당 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고백하자면, 취재차 입사한 기획부동산이 ‘제대로 된’ 회사여서 운 좋게 한몫 챙긴 기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어차피 오를 땅이니 필수씨가 먼저 사라”라며 집요하게 파고드는 담당 부장에게 한마디 대꾸조차 하지 못한 데는 “5년 뒤에 (땅값이) 정말 오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어서였다.
의심하기로 작정하고 들어온 사람마저도 이러할진대 어머니뻘 차장님들이 ‘부동산 기획자’들의 혀끝에 이끌려 땅을 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10월27일부터 11월15일까지 일했던 기획부동산 2곳 모두 최소 판매 단가가 1500만원선이었다. 이 ‘1500만원짜리 욕망’은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한 최적의 투자방법”이라는 말로 포장돼 어머니의 유산을, 보험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을, 아껴뒀던 노후자금을 노렸다.
기획부동산 취업 취재기가 나간 뒤 기획부동산과 소송 중이거나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로부터 여러 연락을 받았다. 그중에선 “2020년 집안의 어르신이 ㅈ이라는 회사에 당해서 환불을 받아낸 바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환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ㅈ사는 입사 지원서를 넣어둔 곳이었다. 취재 도중 어렵사리 ㅈ사에 다니는 사람과 연락이 닿아 “사기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며 우려의 말을 전했는데, 반응이 뜻밖이었다. “이렇게 좋은 회사가 없는데 땅을 잘 알지도 못하는 당신이 뭔데 사기라고 하지?” ㅎ사를 퇴직한 후 취재하면서 담당 부장이었던 박정자(59·가명)씨에게도 ㅎ사가 파는 당진 땅이 지닌 문제점을 말해줬지만, 비슷한 반응이었다. ‘부동산 불패’ 신화의 나라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겠다는 욕망을 그 누가 어떤 말로 꺾을 수 있을까. 가진 자의 투기보다 더 절실한 까닭은 초라해진 삶을 반전하리란 욕망을 기저에 둔 탓이었다.
아들 둘 명의로 갭투자에 나선 양회승(가명·40대)씨가 50분간 집 앞에서 선 채로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2천만원짜리 욕망’을 정당화하고 믿고, 지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명함을 받아들고선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자신의 팔꿈치를 잡아당기는 아내의 손길을 뿌리치고선 “할 말은 해야겠다”며 부동산에 ‘투신’하게 된 과정을 절절하게 설명했다. 중소기업에서 20년을 일해서 받는 300만원대 월급으로는 서울에서 ‘내집 마련’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만큼은 나와 같은 인생을 살게 하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다 대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기자님은 (부동산 말고 돈 벌) 방법 있어요?” 순간 당황했지만, ‘사실 저도 잘 모르겠다’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겸연쩍게 웃어넘겼다.
연합뉴스
‘10살 집주인들’ 기사가 나간 뒤 ‘미성년자 자녀가 있으시면 선물하기 좋은 아파트입니다’라는 글을 부동산 투자 카페에 올린 ㅅ씨는 <한겨레>에 전화를 걸어왔다. ㅅ씨 또한 양씨처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당동의 한 아파트를 자녀 명의로 구입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고 되물었다. 위법은 없지 않느냐는 그의 항변에 ‘그렇다’고 답을 했지만, 그는 연신 불안해했다. 실상 누군가는 그의 정보에 고마워할 법하다.
“월급을 모아서는 (부동산을) 살 수 없는 시대”, 노동소득으로 부동산 자산소득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에서 ‘2천만원짜리 욕망’은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에게 오늘을 사는 동력이 될 것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욕망마저 가난할 순 없으니까. 기사를 놓고 “한편의 소설 같다”라는 평가가 더러 있었다. 다른 이유가 없겠다. 현실이 소설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를 사면 된다는 거야?” ‘소설’을 읽고 난 뒤의 주변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그 소설의 시작은 이것이다. 바로 기획부동산에서 들은 말들….
☞기획부동산 ㅎ사 임원들의 발언 녹취록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