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11시께, 러시아의 자국 침공을 규탄하는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서혜미 기자
“어린아이들에게 지하실에 숨어서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겁에 질린 어른들의 얼굴을 보고 사이렌의 굉음 소리가 울릴 때마다 극심한 공포에 울고 지하실에 있기 싫다고 비명을 지르기도 합니다.”
6일 오전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 대사관 인근에서 집회를 열어 자국을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며,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촉구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국가를 제창하며 희생된 우크라이나 군인과 민간인을 위해 묵념을 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러시아군의 공습에 불안에 떨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처한 상황을 알리는 현지인의 편지가 낭독됐다. 사흐노 카테리나(28)는 편지를 통해 “우리는 키이우(키예프)를 떠나 약 350km 거리에 있는 흐멜느치키라는 도시 근처로 피난을 왔다. 하지만 여기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오는 9일 3살이 되는) 제 딸 알리사는 잠을 자다가 ‘총알, 총알 날아’라고 소리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악몽에서 깨는 일이 일상이 됐다”고 전했다. 한국에 체류 중인 드므트로는 발언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협력이라는 이유로 침략국을 돕지 말아달라, 러시아와 관련된 스포츠 및 문화 행사를 보이콧해달라”며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대를 지원해달라고 말했다.
가족을 통해 소식을 접하는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는 우크라이나 상황을 우려했다. 남부의 크로프브니츠키 출신인 대학원생 마리아(25)는 “군에 자원입대한 아버지가 걱정돼서 하루에 5번씩 연락을 하고 있다”며 “고향은 아직 괜찮지만, 키이우는 식료품 보급이 끊길 것 같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결혼 이주민인 옥사나(44)도 “친척이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사는데 피난민들이 계속 밀려온다고 한다”며 “아직 실제 폭격은 없었지만, 공습경보가 수시로 울려 대피소로 피하는 상황에 다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인뿐 아니라 국내·외국인들도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전쟁 반대를 주장하기 위해 이날 집회에 참석했다.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를 졸업한 류아무개(24)씨는 “저희 과랑 직결된 일이기도 해서 나왔다”며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고, 민간인의 피해는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자포리자 원전 장악 소식을 듣고 집회에 참여한 대만인 쪼윤웨이(38)는 “핵 문제는 개인이나 한 나라가 아닌 전 세계의 문제이므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러시아를 비판하고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6일 낮 12시30분께, 재한 우크라이나인들과 이에 연대하는 집회 참가자들이 덕수궁 앞을 행진하고 있다. 서혜미 기자
우크라이나 국기를 마스크에 그려 넣거나, 파란색과 노란색 리본을 옷이나 가방에 단 집회 참석자들은 “전쟁을 멈춰라(STOP WAR)”, “우크라이나를 도와달라(HELP UKRAINE)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이날 오전 11시40분께부터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행진하며 “푸틴, 전쟁을 멈춰라”, “우크라이나 국민 만세”, “대한민국 감사합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정동 분수대에서 출발해 시청역, 염천교를 지나 출발지로 돌아온 이들은 오후 1시께 집회를 마무리했다.
한편, 이날 오후 2시에는 재한 러시아인이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오후 3시에는 재한 벨라루스인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러시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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