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4일 윤씨가 의료봉사를 마치고 현지 주민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는 10년 넘게 현지인들을 대상을 의료봉사를 해오고 있다. 윤씨 제공
“한국 언론 기사에 달린 ‘왜 떠나지 않고 한국 정부에 부담을 주냐’ 같은 댓글에 상처를 받습니다. 저도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아내의 조국이고, 저에겐 제2의 고향인 이곳을 떠나기 어렵네요.”
지난 1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한겨레>와 전화로 인터뷰한 윤아무개(47)씨는 우크라이나가 ‘제2의 고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의대를 졸업해 10년 넘게 이곳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가정을 꾸렸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공습이 지속되는 가운데 윤씨처럼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교민들이 여전히 있다. 우크라이나인과 가정을 꾸려 생활기반이 현지에 있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은 피란민들을 도우며 전쟁의 불안을 이겨내고 있다.
16일 외교부 설명을 들어보면, 한국시각 11일 밤 10시 기준 우크라이나 현지엔 교민 28명이 남아있다. 이들 중 잔류를 희망하는 19명은 대부분 현지에 가정을 꾸린 사람들로 추정된다. 윤씨는 “선교사나 유학생 등 일시적으로 이곳에 온 사람들은 전부 인근 접경지역이나 한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안다”며 “지금까지 남아있는 교민은 3~4가정 정도로 알고 있는데, 대부분 이곳에서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생활기반이 이곳에 있어 떠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연락하는 교민 중 한 사람은 거주지에서 헌신적으로 구호활동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윤씨에게 현재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드니프로는 고향이나 다름없다. 대학을 다니고, 병원을 차리고, 우크라이나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장인, 장모 등 가족들이 생겼다. 11살, 8살인 아이들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는 “저도 전쟁 직전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갈까 고민도 많이 했다. 혼자였다면 전쟁이 벌어지고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갔겠지만, 이곳은 아이들의 고향이고, 제겐 제2의 고향인 만큼 애정이 있는 곳이기에 이곳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윤씨의 아내(왼쪽)는 새벽 3시까지 피란민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했다. 윤씨 제공
현지 상황이 나날이 악화하면서, 윤씨는 피란민들을 돕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 1일 연락했을 때만 해도 드니프로는 비교적 공습이 덜했지만, 현재는 하루에도 수차례 공습경보와 포격음이 들린다고 한다. 그럼에도 하르키우 등지에서 인근 국가로 피란 가려는 피란민들은 이곳을 중간 지점으로 삼아 몰려들고 있다. 윤씨는 “오늘(14일)도 하르키우 등지 보육원에서 아이 150명이 피난 온다고 해 교회 3곳에 잠자리와 먹을 것을 준비했다. 이들에게 나눠줄 음식과 옷가지를 구하기 위해 아침 8시부터 통금 시간인 저녁 8시까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14년 ‘돈바스 내전’ 당시에도 루한스크 지역에서 피란민에게 약을 나눠주고 간단한 치료를 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러시아 침공 직전엔 상황이 열악한 현지 주민들에게 안경과 의약품을 나눠 주는 등 2주에 한 번씩 자비 180~200만원을 들여 의료봉사를 했다. 윤씨는 “최근 1~2개월 된 젖먹이들을 데리고 오는 피란민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2014년 내전 중에 둘째 아이가 생기면서 기저귀도 없고, 아이 이유식도 구하기 어려웠던 과거가 생각나서다.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을 그저 두고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6.25를 겪은 부모님도 윤씨에게 ‘우리도 예전에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았으니 너도 최대한 사람들을 도우라’고 격려를 했다고 한다.
그는 집 안에 갇혀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윤씨는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는 교민들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남아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며 “산불, 러시아 경제제재 때문에 한국에 계신 분들도 매우 힘드신 것으로 안다. 그래도 전쟁이 빨리 끝나고, 이곳 교민과 주민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지난 13일 윤씨는 피란 올 150명가량의 아이들을 위해 간식을 준비했다. 윤씨 제공
지난 1일 윤씨가 긴급 구호를 위해 현지에서 구한 식염수통. 윤씨는 현지에 의약품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씨 제공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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