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저희가 백악관같이 낮은 펜스를 설치하고 여기까지(집무실 앞) 시민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할 생각입니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20일 기자회견)
윤석열 당선자는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 강행 방침을 밝히며 미국 백악관을 예로 들었다. 백악관처럼 대통령 집무실 주변을 공원이 둘러싸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는 등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 당선자 쪽은 집무실 주변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기존 청와대 경비 방식을 따라 사실상 불허 방침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백악관 모델을 따른다면서 공원만 남기고 미국식 민주주의 상징이 된 백악관 주변 자유로운 집회·시위는 빼놓겠다는 것이다.
현행 집시법은 ‘대통령 관저’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 장소에서는 집회·시위를 금지한다. ‘대통령 집무실’ 관련 규정은 없지만 윤 당선자 쪽은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한 뒤에도 집회·시위를 규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집무실 이전을 주도하는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은 “공원지역은 국민들의 휴식처면서 안식처라 시위는 사실 자제돼야 한다. 저희가 경호 차원에서 이 지역 일정 범위는 시위하지 못하도록 조처할 예정이다. 현재 법으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경호구역을 지정해 집회를 제한할 수 있는 대통령경호법, 주요 도로에서 집회를 제한하는 집시법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집회·시위는 청와대 인근 100미터 거리인 효자치안센터, 1인 시위와 기자회견마저 청와대 정문에서 멀찍이 떨어진 청와대 사랑채 앞 분수대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청와대 이전 티에프’ 팀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집회·시위 관련 질문에 “그분들이 적절히 의사표시를 할 공간을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국방부로 집무실을 이전해도 ‘국민 소통’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2020년 11월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트럼프를 몰아내라'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을 펼쳐 들고 있다. 워싱턴/ EPA 연합뉴스
윤 당선자가 모델로 삼은 백악관은 다르다. 백악관 북쪽 라파예트 공원은 20세기 초 여성참정권운동 집회, 1960~70년 민권·반전운동 집회 명소였다. 지금도 백악관 울타리 앞에서 시위 참여자들이 손팻말과 펼침막을 든다. 1인 시위자도 흔히 볼 수 있다. 사전신청을 해야 하지만 거부되는 일은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 바로 앞에 ‘트럼프를 제거하라(Remove Trump)’는 대형 펼침막을 든 시위대가 집결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주변 시위를 제한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지만 시민과 인권단체 반발로 철회됐다.
전문가들은 ‘국민 소통’을 명분으로 집무실 이전을 강행한 만큼 집회·시위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21일 “관저가 아닌 집무실 주변에도 집회·시위를 제한한다면 이는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당선자의 이전 취지와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채완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공원과 집회 장소를 분리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 의사표시 수단인) 집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인수위의 별도 집회 장소 마련안은 오히려 허용할 수 있는 집회를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했다.
애초 주한미군이 반환하는 부지를 활용해 공원을 만들고 대통령 집무실과 연결시킨다는 구상 자체가 윤석열 정부 임기 안에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녹색연합은 성명을 통해 “용산공원 종합기본계획상 오염 정화부터 공원 조성까지는 7년 이상(반환 시점 기준) 소요된다는 점에서 용산공원을 국민 소통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한 시위 참가자가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그려진 비둘기와 ‘전쟁을 멈춰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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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대통령 관저 100m 이내 집회 금지’ 풀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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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미
ham@hani.co.kr 장예지
penj@hani.co.kr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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