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다비드 하브릴로프(14)와 예바 하브릴로바(12) 남매가 21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2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남녀 페어 경기에 출전해 절도있는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고양/연합뉴스
“우리는 강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주겠어요.”
우크라이나 태권 가족은 다부지게 말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폴타바에서 폴란드 바르샤바까지 차로 30시간을 이동한 뒤에야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공항이 폐쇄됐기 때문. 이들은 긴 여정 끝에 ‘2022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다비드 하브릴로프(14)와 예바 하브릴로바(12)는 아버지이자 매니저인 루슬란 하브릴로프(43)와 함께 이번 대회에 우크라이나를 대표해 참가했다. 애초 6명 선수단이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이들의 코치 또한 징집 대상자여서 막판에 한국행이 좌절됐다.
아이들과 18일 입국한 루슬란는 21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함께 훈련했던 선수들은 전쟁 때문에 모두 집을 버리고 피난을 떠났다. 우리 트레이너는 폴타바에서 800㎞ 떨어진 오데사에 산다. 우리 아이들은 줌을 통해 원격으로 훈련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가 사는 지역은 러시아 포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됐다”면서 “우리 가족은 집에 남기로 했다. 전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우리가 운영 중인 태권도장을 내주고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아내와 막내는 현재 우크라이나에 있다.
태권 남매는 7년간 태권도를 수련했는데, 21일 유소년부(만 12~14살) 페어(2인조) 경기에 함께 출전해 13개 팀 중 7위로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은 22일 열린다. 예바는 이날 유소년부 여자 개인전도 뛰게 되며, 다비드는 23일 유소년부 남자 개인전에 출전한다. 다비드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태권도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노력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본보기가 되고 싶다”면서 “우크라이나 민족이 강하고 용맹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현지에 있는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자. 반드시 꿈은 이뤄진다”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들 가족은 대회를 마친 뒤 세계태권도본부인 국기원 등을 방문하고 26일 출국할 예정이다. 폴란드로 가서 다시 30시간 동안 차를 몰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루슬란는 “아이들이 자신의 기량을 선보일 기회를 얻었다. ‘이것이 우크라이나다’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양희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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