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룸에서 열린 2차 내각 발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가 변호사 시절 형사사건 담당 판사에게 청탁을 해 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은 피고인의 알선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이 후보자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종결했다.
2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서부지검은 2014∼2016년 뇌물수수 사건의 피고인 ㄱ씨를 속여 이상민 후보자 비롯해 ㄱ씨 담당 사건 판사나 검사, 대법관 등에게 청탁을 해준다며 5억15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골프장 회장 출신의 ㄴ씨를 2018년 5월 재판에 넘겼다. ㄴ씨가 ㄱ씨에게 이 후보자를 소개시켜 주면서, 그를 통해 뇌물수수 사건 담당 판사 등에게 청탁을 해준다는 명목으로 2014년 11월과 2015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1억1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검찰은 보았다. ㄴ씨는 지난 2009년 골프장 회장을 지내며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고, 골프장 인허가와 관련해 정관계 인사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수사도 받았다. 당시 ㄴ씨에게 돈을 받은 한나라당 의원은 모두 당선무효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ㄴ씨에 대한 변호사법 위반 사건 1·2심 판결문을 보면, 2014∼2015년 당시 법무법인 율촌 소속이었던 이 후보자가 ㄱ씨를 직접 만나고 그 뒤 이메일로 사건 관련 상담을 해 준 정황이 드러난다. 2014년 11월 ㄴ씨 소개로 이 후보자를 처음 만나 상담을 받은 ㄱ씨는 ㄴ씨와 이 후보자 선임 여부도 상의했다. 검찰은 ㄱ씨가 “(ㄱ씨 사건) 담당 부장판사와 대학 동기인 이상민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해 담당 부장판사에게 로비를 해야 하니 돈을 달라”는 ㄴ씨 요청에 따라 배우자와 함께 7천만원을 현금으로 건넨 것으로 판단했다. ㄴ씨는 그 다음해인 2015년 10월에도 “이 변호사를 통해 항소심 부장판사에게 로비를 해야 하니 돈을 달라”며 ㄱ씨로부터 4천만원을 받은 혐의도 있었다. ㄱ씨는 자신의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시기 이 후보자에게 보낸 이메일에 “잘 보아주시고 혜안과 지원 부탁드리옵니다”, “이러한 기대 꼭, 현실에서 느낄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좋은 결과 낳을 수 있기를 간절히 지원 부탁드립니다” 등의 문구를 덧붙이기도 했다.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1천만원을 선고받았던 ㄱ씨는 2심에서 징역 4개월 및 집행유예 2년, 벌금 400만원으로 감형받았다.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ㄴ씨에 대한 1·2심의 유무죄 판단은 엇갈렸다. 하지만 이메일 내용 등을 토대로 두 재판부는 모두 ㄱ씨가 이 후보자를 통한 불법적인 청탁 목적으로 ㄴ씨에게 돈을 건넸으리란 의심을 판결문에 적시했다. ㄴ씨 쪽은 혐의를 부인하고, 이 후보자도 자신의 부탁을 받고 ㄱ씨에게 무상으로 자문을 해 준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1심 재판부인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는 유죄로 인정했다. ㄱ씨와 이 후보자가 나눈 이메일 내용 등을 유죄 판단의 토대로 삼았다. “이상민 변호사에 대한 위 금원 지급은 한창 진행 중이던 (ㄱ씨의) 뇌물수수 사건에 관해 변호사를 통해 해당 재판부에 ‘로비’를 직접 하겠다는 구체적인 목적이 드러나는 금원이고, 그 액수(1억1천만원)가 상당하다”고 적시했다. 재판부는 2019년 2월 ㄴ씨에게 징역 2년과 2억1천만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배준현)는 “ㄴ씨가 2015년 10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이 변호사와 뇌물수수 사건 상담을 위해 약 10여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았는데, 이 변호사가 율촌에서 퇴직하고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계속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 이메일의 내용에 비춰보면 ㄱ씨가 ㄴ씨에게 변호인의 선임 및 청탁 등을 명목으로 돈을 교부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고 판단했다. 이 후보자는 2015년 11월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취임해 2017년 12월까지 임기를 지냈는데, 이 시기에도 ㄱ씨 사건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다만 2심 재판부는 ㄴ씨에게 건넸다는 현금의 출처가 불분명하고, ㄴ씨와의 거래관계가 적힌 문서 파일이나 수첩 등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 후보자 등의 사건 외에 또 다른 청탁 사건만 1심과 동일하게 유죄로 인정해 2019년 9월 ㄴ씨에게 징역 1년6개월 및 추징금 1억원을 선고했다. 결국 이 후보자가 연루된 청탁 사건은 증거불충분으로 2019년 11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후보자가 ㄴ씨를 통해 금품을 받았는지는 물론이 후보자의 ㄱ씨 사건 선임 여부 및 그가 ㄱ씨에게 해준 ‘이메일 상담’의 성격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이 후보자는 ㄱ씨와 ㄴ씨의 청탁 사건의 핵심 인물인데다 수사 과정에서 ㄴ씨가 이 후보자와의 인연을 이용해 불법을 저지르고, 세 사람(ㄴ씨, ㄱ씨, 이 후보자)의 만남 및 이메일 내역까지 확보하고도 검찰은 이 후보자를 참고인 조사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겸직 금지 의무를 갖는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시절까지 공적 사안과는 거리가 먼 뇌물 수수 사건을 두고 ㄴ씨와 이메일을 나눈 이유는 무엇인지, △ㄱ씨가 ㄴ씨와 이 후보자 선임에 대해 논의했음에도 이 후보자가 실제로 선임계는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메일 상담을 진행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은 밝혀지지 않았고, 핵심 인물에 대한 조사는 쏙 빠진 채 ㄴ씨의 사건은 무죄로 종결된 것이다.
정민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10여차례 메일을 주고받고, 권익위 부위원장 시절까지 사건 관련 메일을 주고받은 것을 검찰이 확인했다면, 변호사 선임계를 내지 않은 채 금품을 수수했을 가능성 등 여러 위법한 정황을 염두에 둔 수사가 진행됐어야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당시 서부지검에서 ㄴ씨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ㄴ씨가 해당 법조인의 이름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후보자와는)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가 ㄱ씨와 나눈 이메일이나 만남 등에 대한 조사 여부에 대해서는 “몇 년 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 쪽은 “ㄴ씨와 ㄱ씨 사이에 돈이 오갔는지 여부는 알지 못하고, 이 사안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것으로 안다”며 “ㄴ씨가 ㄱ씨를 잘 부탁한다며 데리고 온 적이 있고, 법률적인 조언을 해 준 것은 맞지만 권익위 부위원장 재직 이후에는 그런 조언을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권익위 부위원장 시절 전자우편을 나눈 점에 대해서도 “한 두번 정도 잘 되길 바란다는 수준 정도의 의례적 답장을 한 것이 전부”라고 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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