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종청사와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국무회의를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을 전담하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관리단) 신설안이 31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상왕 법무부’ ‘인사정보 남용’ 등 각종 우려가 끊이지 않았지만, 결국 윤석열 대통령 뜻에 따라 정부부처 장·차관·국장, 사법부 고위법관 등 고위공직자 후보군 전체 인사정보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밑으로 들어가게 됐다.
전례 없는 권한을 쥐게 된 한 장관은 이를 의식한 듯, 관리단이 인사검증을 맡게 되면서 오히려 감사원과 국회, 언론 등의 감시와 견제가 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 전날 한 장관은 법무부 권한 비대화 우려를 반박하며 “인사검증 업무가 국회 질문을 받게 되고 감사원 감사 대상이 된다. 과거 정치권력의 내밀한 비밀업무 영역에서 통상적으로 감시받는 늘공(직업 공무원)들의 업무로 전환된다”고 밝혔다. 이어 “기자들이 인사검증 책임자였던 민정수석 등에게 질문해본 적이 있는가. 이제 가능해지는 것”이라 덧붙였다. 법무부가 업무를 맡으면 투명성이 한 차원 높아질 수 있단 설명이다.
정치권과 법조계 등에선 사실과 다르거나 빈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우선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 업무 역시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민정수석실이 인사검증을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는 당연히 감사 대상이지만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감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법무부 관리단으로 인사검증 업무가 이관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감사원 업무에 밝은 한 인사는 “인사검증 권한이 대통령실과 법무부 어디에 있는지를 떠나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 대해 감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감사원 고위직에 대한 인사검증도 법무부가 맡는 상황에서 누가 섣불리 감찰에 착수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장용근 홍익대 법대 교수는 “그간 감사원이 대통령 인사권을 존중한다는 이유 등으로 인사검증에 대한 감사를 해오지 않았다. 법무부가 인사검증을 나서게 되더라도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장관이 말한 국회와 언론에 의한 견제도 사실상 ‘질문’만 있고 ‘답변’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인사검증은 신상·재산·가족 등과 관련한 내밀한 개인정보를 다룬다. 대통령 인사권 행사를 두고 어떤 추궁을 하더라도 답변을 회피할 수 있는 근거를 항상 마련해 두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서도 수사 사안에 대해서는 ‘피의사실 공표’ 등을 이유로, 감찰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감찰권의 비닉성’을 근거로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보다 훨씬 내밀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법무부 관리단이 검증 내용과 과정, 결과의 적정성을 국회와 언론에 공개해 통제 받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한동훈 장관이 신상정보를 관리하게 되는 고위공직자 및 후보군은 광범위하다. 법무부는 아직까지 인사검증 대상자 범위를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기존 청와대 민정수석실 검증 대상 대부분이 법무부로 이관될 가능성이 높다.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정무직은 물론, 2급 이상 고위공무원 승진 대상자(부이사관급), 차장검사 승진 대상자(부장검사), 경찰 경무관 이상 승진 대상자(총경), 군장성 승진 대상자(대령), 국립대 총장 등이 포함된다. 웬만한 고위공무원단 후보군 1차 검증자료가 법무부 캐비닛에 차곡차곡 쌓이게 되는 셈이다. 더구나 관리단은 대법관 등 사법부 고위 법관 인사검증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법무부는 이 권한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뜻을 아직까지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인사검증 대상이 정해진 것은 없고 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과거보다 검증 대상 범위가 넓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인사검증 업무를 대통령실 밖으로 이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법무부는 대안이 아니라고 본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무부는 수사와 정보 기능이 섞일 수 있다. 독립기구인 인사혁신처 또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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