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업무 관련성 있는 지인과 골프를 친 것만으로도 정직 징계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반면 일반 공무원보다 훨씬 더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이영진 헌법재판관은 이혼 소송 중이던 사업가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고, 자신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한달 넘게 재판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김정중)는 품위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정직 1개월 징계 처분을 받은 공무원 ㄱ씨가 소속 기관장을 상대로 낸 징계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5일 밝혔다.
규제심사 업무를 담당하는 ㄱ씨는 2020년 4~7월 규제심사 기간 동안 ㄱ씨 심사에 영향을 받는 기업에 다니는 지인 ㄴ씨와 두 차례 골프를 치고 세 차례 식사했다. 이후 ㄱ씨 소속 기관은 ㄱ씨가 이해 당사자를 사적으로 접촉하고 향응을 수수한 의혹이 있다며 지난해 2월 정직 1개월의 징계를 했다. ㄱ씨는 “단순 의혹 만으로 징계할 수 없다”며 징계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ㄱ씨는 재판 과정에 ㄴ씨와의 만남에 대해 “업계의 현실적인 운영현황 등을 습득해 이해관계자들의 이견 조정 업무에 활용하고자 규제심사와 직접적인 이익이 연계되지 않은 회사에 근무하는 친한 지인과 만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ㄱ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공직자가 이해관계인과 사적으로 만나는 것, 특히 건전한 사회통념에 비추어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골프 모임을 갖는 것은 그 자체로 공정한 직무의 수행이라는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기에 충분하다”며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원고 주장대로 ㄴ씨의 업무 관련성이 없거나 현저히 낮고 실제 향응 수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향응 수수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므로 비위의 정도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규제심사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조회가 가능해 ㄱ씨가 사적으로 의견조회를 할 필요성이 없다는 점 등도 고려했다. ㄱ씨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이번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규제심사 공무원에 대한 법원의 엄정한 판단은 최고 법관인 이영진 재판관의 처신과 고스란히 겹쳐진다. 이 재판관은 지난해 10월 고향 후배가 마련한 골프 모임에 참석했다. 여기에는 골프 비용 120만원과 식사비를 댄 사업가, 이 재판관 대학 후배이자 사업가의 이혼 소송을 맡은 변호사 등이 함께 했다. 해당 사업가는 이 재판관이 ‘가정법원에 아는 부장판사가 있으니 도와주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초 이런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이 재판관은 ‘골프 접대는 받았지만 소송 관련 도움은 주지 않았다’며 계속 재판 업무를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재판관 징계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이번 논란에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이 재판관 관련 고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