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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현행 구속기준으론 스토킹범 못 잡는다…“더 적극적 조치 필요”

등록 2022-09-16 15:02수정 2022-09-16 22:34

‘살인의 전조’ 스토킹, 강력범죄 가능성 내포
판사·검사 주관따라 영장 청구·발부 ‘들쭉날쭉’
“스토커 위치추적장치 부착 등 실무대책 필요”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16일 오전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16일 오전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1. 지난해 1월 인천, 대학 후배의 이불 위에 자신의 체액을 뿌린 혐의로 붙잡힌 20대 ㄱ씨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했다. 공포에 질린 피해 여성은 이사까지 했지만 ㄱ씨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 받으면서 피해자의 새집을 찾아내 총 4차례 무단 침입했다. 경찰은 ㄱ씨를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재차 신청했지만 법원은 또다시 기각했다. ㄱ씨가 학생인데다 반성하고 있고 도주의 염려가 없다는 이유였다. 피해자 쪽 변호사는 “이사를 했지만 비밀번호까지 알아내 침입하는 전형적인 ‘스토킹’이었다”라며 “피해자의 트라우마가 심각했다”고 전했다.

#2. 올해 2월 서울 구로구에서는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40대 여성을 50대 남성 ㄴ씨가 살해하는 일이 있었다. 범행 이틀 전 경찰은 ㄴ씨에게 스토킹, 폭행 및 특수협박, 강간,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며 이를 반려했다. ㄴ씨는 자신을 고소한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스토킹 범죄에 이어진 피해자에 대한 2차 범행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참사의 가해자인 전아무개(31)씨도 피해자로부터 2차례 고소를 당했지만, 불구속 재판을 받다가 결국 입사 동기인 피해자를 살해했다. ‘살인의 전조’로 불리는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에 대한 강한 집착과 소유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에 대한 강력 범죄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특히 불구속 수사·재판 도중 이런 2차 범행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국가사법시스템이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에 대한 위해 가능성이 높은 스토킹 범죄의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구속 기준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영장 발부 조건 셋: 일정한 주거 없음, 증거인멸 염려, 도망 우려

구속영장 발부의 요건 등을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제70조는 구속 사유로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할 우려가 있는 때’를 명시하고 있다.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라는 형사사법시스템의 필요에 따라 구속 여부를 결정하라고 1차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구속 여부를 판단할 때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하라고 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에 대한 위해 가능성이 내재된 범죄이기 때문에 심각한 후속 범죄를 예상하고 적극적으로 조치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는) 스토킹 범죄를 바라보는 검사와 판사의 주관에 따라 처분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검찰과 법원이 스토킹 범죄 대응에 대한 지침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재련 변호사도 “스토킹 범죄는 보통의 구속영장 발부 기준과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가해자가 심리적으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지, 피해자의 안전이 침해될 우려는 없는지 등을 고려해 계량화한 체크리스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해자 심리 상태, 피해자 안전 침해 우려 등 체크해야”

현행 스토킹처벌법의 처벌 규정과 피해자 보호조치가 모호해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현정 신한대 교수(경찰사법학)는 지난해 말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논문을 통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스토킹의 정의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토킹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망상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자가 ‘자신의 의사에 반한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에서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에 따른 신변안전 조치의 대상(살인·범죄단체구성·마약 등 강력범죄 신고자)에 스토킹 피해자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토킹은 범죄 특성상 피해자 신고에 (가해자가) 악감정을 품고 보복으로 나아갈 우려가 있다. 그러나 현행법에는 이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위치추적장치 부착, 신변보호 전담 부서 신설 등 목소리

이 밖에도 실무적인 대책도 함께 요구되고 있다.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무시하고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스토킹 범죄자에게도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스토킹 피해자의 신변보호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 신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스토킹 범죄와 성범죄 등의 수사는 각 경찰서의 여성청소년과, 일반적인 범죄 예방은 생활안전과 등으로 이원화돼 있는데 별도의 전담부서를 설치해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청은 최근 스토킹·보복 범죄와 관련해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 계량화’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피해자 보호조치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 마련에 나섰다. 2차 범행의 위험도를 점수로 산출해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객관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서혜진 변호사는 “구속만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이제라도 피해자의 위해 우려에 대한 기준을 법원이 만들어야 한다”며 “스토킹처벌법 시행에 맞춰 구속 기준과 보호조치 등 제반 제도를 함께 손봐야 했는데, 후속 조처들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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