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빚은 다양한 모양을 가졌다. 열심히 일해도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갑작스러운 사고나 범죄 때문에, 때론 투자를 위해서 청년들은 대출을 받았다. <한겨레>는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16명의 빚진 청년을 8월5일부터 26일까지 인터뷰했다. 인터뷰에 응한 청년들은 19~36살로 서울·인천·청주·울산·광주 등에 거주했다. 청년의 빚이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했는지를 두차례에 걸쳐 살핀다. 생계 혹은 어쩔 수 없는 불운 때문에 빚을 지게 된 청년들을 먼저 만난다.
① 2022 청년부채 보고서
② 연체의 늪에 빠진 이유
③ 청년빚의 다양한 얼굴
④ 대출이 제일 쉬웠어요
빚은 빠르게 자란다. 때론 벌이가 있어도 그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27살이던 2013년 아이가 생겨 결혼한 김아무개(36)씨가 그랬다. 결혼을 할 무렵 그는
인테리어 물품 도매상 직원이었다. 월급은 200만원 남짓. 아내는 아이를 돌봐야 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자주 아팠다. 새벽에 응급실을 찾은 것만 해도 여러차례. 더워도 추워도 안 됐다. 여름엔 에어컨을 틀어야 했고 겨울엔 난방을 돌려야 했다. 친척집에 살고 있어 집세는 안 내지만, 상가주택이라 관리비만 50만원가량 나왔다. 세 가족의 보험비만 40만원 들었다. 생활비로는 130만원 정도를 썼다. 아이의 병원비라도 더해지면 한달 지출이 250만~300만원 정도 됐다. 당시 근로자 3인 가구 평균 가계 지출은 339만6000원이었다(통계청). 다른 집보다 아껴 쓴 셈이지만 매달 50만~100만원씩 항상 적자였다.
처음엔 부모와 처가에 기댔다. 그것도 한두번이었다. 빚은 소득과 지출의 불균형한 틈새에서 움텄다. 첫 대출은 ‘햇살론’ 500만원이었다. 몇개월 버티지 못했다. ‘대환 대출’을 시작했다. 700만원을 대출받아 기존의 500만원을 갚고 200만원을 생활비로 쓰는 식이었다. 대환 대출을 받자 빚은 금방 자랐다. 대출금이 1000만원에 이르자 대환 대출을 추가로 받기 어려워졌다. 새로 500만원의 대출을 받아 다시 대환 대출을 시작했다. 또다시 대출금은 1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그렇게 살면 돈 못 모아. 주식이라도 해야 안정적이지.” 힘겹게 생계를 이어나가던 2013년께 친구들은 주식을 권하며 종목까지 추천했다. 김씨는 카드론으로 2000만원을 대출받아 주식 투자에 나섰다. 부족한 생활비를 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 희망마저 없으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주가는 곤두박질치기만 했다.
어느새 대출이 가능한 곳이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밖에 남지 않았다. 월급은 느리게 올랐지만, 지출은 빠르게 늘었다. 비싼 이자가 지출에 더해졌기 때문이다. 대출이 더 잦아졌다. 이자는 악착같이 갚았지만, 원금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빚은 5년 만에 5000만원이 됐다. 결국 김씨는 32살이던 2018년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회생을 완료하려면 64만원의 변제금을 36개월 동안 갚아야 했다. 총 변제금은 2304만원. 월급은 250만원으로 올랐지만, 변제금을 내면 180여만원밖에 남지 않았다. 5년 전보다 더 나쁜 상황이었다. 아이는 다섯살이 됐다. 드는 돈은 더 많아졌다. 대출 없이 버틸 수 없었다. 개인회생 중에는 돈을 빌릴 곳이 마땅치 않다. 대부업체의 회생 전용 대출을 이용해야 했다. 당시 법정 최고 금리인 24%의 이자를 냈다. “똑같은 패턴이 반복된 거죠. 일해서 버는 돈은 똑같고, 아이가 클수록 나가는 건 점점 더 많아지고…. 나중엔 대부업체도 대출을 안 해주더라고요.”
“30만원 일주일 빌려줄 테니 50만원 갚아라”
변제금을 내면서
생계를 감당할 수 없던 김씨는 인터넷에서 ‘대출’을 검색했다. 곧장 ‘대출○○’ ‘대출○’과 같은 여러 대출 플랫폼이 나왔다. 300만원이 필요하다고 대출 플랫폼에 글을 올렸다. 사채업자에게 전화가 왔다. “300만원이든 500만원이든 우리가 1년 할부로 빌려드릴게요.” 김씨는 집 앞 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필요한 서류는 간단했다.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초본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채업자는 김씨의 휴대전화를 가져가 전화번호부에 있는 번호를 모두 적어갔다. 돈을 갚지 않을 경우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말을 바꿨다. “첫 거래니까 소액으로 먼저 해야 해요. 30만원을 빌려줄 테니 일주일 뒤에 50만원을 갚으세요. 신용을 체크하기 위한 거예요. 계속 잘 갚으면 대출금을 더 올려줄게요.” 사채업자가 떼어간 선이자의 금리는 연 3467%. 빚은 대적할 수 없는 거인으로 자라 김씨를 내려봤다. “불법인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어요.” 늘 돈이 급했던 김씨는 사채로 사채를 돌려 막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사채 이자가 월급을 넘어섰다.
“1시간 남았습니다.” “30분 남았습니다.” “10분 남았습니다.” “5분 남았습니다.” “3분 남았습니다.” “왜 지금 안 내세요. 시간 다 됐어요.”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날은 정해진 시각 1시간 전부터 끊임없이 문자나 전화가 왔다. 그 시간이 지나도 돈을 못 갚으면 5만원의 초과 비용을 내고 3시간을 연장해야 했다. 사채업자는 점점 더 험악해졌다. 전화로 욕설을 퍼부었다.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아이가 걱정이 됐다. 아내에게 사채를 썼다고 털어놨다. 가족은 처가로 피신했다. 사채빚을 진 것과 대출의 규모를 처음 들은 아내는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김씨에 대한 믿음에 균열을 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다.
희망이 없었다. 하루는 돌로 발등을 내리쳤다. 뼈라도 부러지면 몇푼의 보험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했다. 삶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회생 변제금만큼은 악착같이 갚았다. 그렇게 지난해 11월 빚을 청산했다. 원금의 수십배를 이자로 쏟아부었던 사채도 서민들의 채무조정을 돕는 시민단체인 ‘주빌리은행’을 통해 정리했다. 주빌리은행이 나서자 그 무섭던 사채업자들이 “다 갚은 것으로 하자”며 물러섰다. 허탈했지만 다행이었다. 지금은 개인회생을 하는 동안 대부업체 등에 진 빚 4000만원을 월 41만원씩 갚고 있다. ‘워크아웃’을 신청해 이자를 감면받고, 상환 기간을 연장했다. 앞으로 8년이 지나면 빚과 결별할 수 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인테리어 기술을 배워 한달에 25일씩 일하는 김씨는 이제 한달에 400만원 정도를 번다. 아내와 다시 결합할 생각도 한다. 회생과 워크아웃, 사채 청산으로 빚과 점점 멀어지자 평범한 일상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10년 만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방법이 없었어요. 대출밖에는…. 하지만 사채를 쓴 건 정말 후회해요. 가족까지 포기하게 됐으니까요. 벼랑 끝에 몰렸던 기분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요.”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과도한 빚에서 벗어나는 법
과도한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법원의 회생 및 파산제도 등이 있다.
신용회복위에서 진행하는 채무조정은 연체 기간에 따라 방식이 다르다. 연체가 예상되거나 한 달 이내 단기일 경우 ‘신속채무조정’으로 상환기간 연장이나 유예를 받을 수 있다. 연체가 3개월 미만이면 이자율 조정을 하는 ‘프리워크아웃’으로 연체 장기화를 방지한다. 그 이상이 되면 ‘개인워크아웃’이다. 금융기관 채무가 3개월 이상 연체됐고 총 채무액이 15억원을 넘지 않을 경우 신청할 수 있으며, 신청 다음날부터 추심이 중단된다. 확정되면 연체 이자가 감면되고 채무자의 재산과 수입 등을 종합한 상환 능력에 따라 원금도 일부 탕감 가능하다.
법원에서 진행하는 채무조정 제도는 ‘개인회생’과 ‘파산면책’이다. 개인회생은 3년 이내에 채권자에게 분할변제를 하는 조건으로 남은 채무 일부를 감면 받는다. 변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수입이 있는 경우 신청이 가능하다. 반면 파산은 채무자가 모든 재산으로도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가능하다. 면책 절차를 통해 남은 채무를 정리하는 방식이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