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잦은 폭염과 폭우, 태풍 피해까지 이어지면서 배추 가격이 크게 오른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에서 배추가 1단에 2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급식에 나물 반찬은 엄두를 못 내요. 2학기 들어서 잎채소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식자재 가격이 두 배 정도 올라 메뉴 짜기가 너무 어려워요.”(서울 성북구 중학교 영양사 김아무개씨·37)
15년 차인 영양사 김씨는 최근 급식 메뉴를 짜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 책정된 급식 단가로는 최근 계속해서 오르는 식재료값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김씨는 “우리 학교 같은 경우는 올해 급식 1인 단가가 3690원 정도인데, 최근 물가 상승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 너무 힘들다. 특히 이번 태풍 영향으로 채소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최대한 가격 영향 덜 받는 콩나물 위주로 반찬을 구성하고 냉동 과일 같은 걸로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오후 2시께 찾은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시장 풍경. 박지영 기자
기록적인 폭우와 태풍 힌남노로 시금치·배추 등 채소 가격이 급등하자 시장 상인, 자영업자, 소비자들 모두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시장을 찾은 손님들은 시장 골목에 진열된 배추·열무 등 채소 가격을 보고 “무슨 열무 한 단에 4천원이나 하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40년 동안 채소 장사를 해 온 문갑순(80)씨는 “원래는 시장 안쪽 점포에서 장사했는데 요즘 하도 물건이 안 팔려서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장사하고 있다. 채소 가격이 하도 올라서 그런지 손님들이 잘 안 사간다”고 했다. 문씨는 이날 한 단에 4천원 하는 열무 가격을 3천원으로 깎아달라는 손님에게 “아이고 그러면 남는 게 없어. 우리도 먹고살아야지”라며 손을 저었다.
지난 13일 오후 광주 북구 각화농산물시장에 배추가 진열돼 있다. 올여름 폭염·폭우가 겹치고 11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배추 도매가격이 한 달 만에 2배로 뛰었다. 연합뉴스
1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를 보면, 지난 16일 배추는 1포기에 평균 9821원(소매가)로 지난해 같은 기간 5646원이었던 것에 견줘 74%가 올랐다. 시금치 1㎏도 지난해 1만4943원(소매가)에서 지난 16일 2만1323원으로 42% 넘게 올랐다. 시금치는 겨울 제철 채소라 원래 여름·가을이 비싸지만 올해는 인상 폭이 더 크다.
오를 대로 오른 가격에 식자재를 사는 소비자들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서울 마포구 사는 이종원(55)씨는 “이번 추석 때 장을 보는데 아기 팔뚝만 한 무 하나가 5천원, 헐겁게 묶인 시금치 한 단에 1만원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국은 끓여야 해서 무는 하나 샀지만 시금치는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김포시에 사는 김현아(55)씨도 “배추 3개들이 한 망이 3만5천원까지 오른 걸 보고 이번 김장은 포기했다”고 했다.
1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잎채소에 ‘포기상추 7000원’, ‘강원도 고랭지(알배추) 만원’ 등 가격표가 붙어 있다. 김혜윤 기자
음식점 등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고공행진 중인 채소 가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서울 성북구의 횟집 사장인 이아무개(67)씨는 “상추는 지금은 2만원대로 떨어졌지만 추석 전까지 한 상자에 5만원을 넘기기도 했다”며 “양파 한 망(20㎏)에 1만6천~1만7천원이던 것이 지금은 2만2천~2만3천원 한다. 식재료비가 부담돼 올해 직원을 1명 줄였다”고 말했다. 청량리 청과물 시장 인근의 한식 뷔페 사장 ㄱ씨는 “가격은 못 올리니 반찬 가짓수를 줄이거나 최대한 가격 영향 안 받는 식재료 위주로 메뉴를 구성하고 있다. 시금치 같은 나물 반찬은 아예 올리지도 못한다”고 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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