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을 저지른 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다른 사람 행세를 했던 절도범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임광호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사성명위조 및 위조사성명행사 혐의로 기소된 ㄴ씨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2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ㄴ씨는 지난 봄부터 <한겨레>가 보도해왔던
명의도용 절도 사건의 진범이다.
ㄴ씨는 신용불량으로 자기 명의의 카드 발급이 불가능해지자 지인 ㄱ씨에게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등을 빌려서 사용해 왔다. 그러다 2018년 5월 서울 동대문에서 자신이 저지른 절도 범행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자신에게 신용카드 등을 빌려준 ㄱ씨의 인적사항을 말하고 해당 절도 사건이 ㄱ씨의 이름으로 진행되도록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도 신분 확인을 소홀히 했다. 경찰은 ㄴ씨 조사를 마치고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ㄴ씨가 지문 인식 절차를 통과하지 못했는데도 추가 확인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은 지문 인식 단계를 임의로 넘기고 ㄴ씨의 신분증 확인도 누락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역시 경찰이 부실하게 넘긴 서류를 보완하지 않았고, 명의가 도용된 ㄱ씨에게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을 구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절도 범죄로 벌금 50만원이 청구된 사실을 뒤늦게 안 ㄱ씨는 2019년 11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지난 1월 ㄱ씨가 절도범이 아니라는 취지의 대검찰청 지문·필적 감정 결과를 받고도 잘못된 기소를 바로잡지 않다가, <한겨레> 보도로 이 사건이 알려지자 뒤늦게 재수사에 나서 보도 사흘만에 진범 ㄴ씨를 붙잡았다. ㄱ씨가 잘못 기소된 형사재판은
지난 4월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채희인 판사의 공소기각 판결로 종료됐다.
이후 ㄴ씨는 사성명위조·위조사성명행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ㄴ씨는 이 사건 말고도 다른 절도 범죄를 저질러서 이미 구속 수감중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ㄴ씨는 “절도 범죄로 형사처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거짓말을 했다”고 자백했다. 이에 재판부는 ㄴ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수사 과정에서 다른 사람인 것처럼 가장해 형사사법기능을 훼손하고 다른 사람을 형사처벌의 위험에 빠뜨린 범행으로 죄질과 범정이 좋지 않다”면서도 “앞서 확정된 판결과 관련된 형평을 고려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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