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사무실이 들어선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 빌딩 앞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실화해위 결정문 수령 관련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경보 형제복지원 피해자협의회 자문위원장이 발언에 나섰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수용자였던 형 때문에 참상을 알게된 강아무개씨는 1982년 형제복지원 비리를 폭로하는 진정서와 고발장을 내무부장관과 치안본부장 등 8개 정부 기관에 제출했다. 이후 부산 북부경찰서는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씨를 폭행과 횡령, 사체유기 혐의 등으로 수사했고, 결과는 ‘무혐의’ 였다. 검찰 수사에 앞서 5년 먼저 형제복지원 사태를 공론화할 기회였지만, 당시 경찰은 형제복지원 수용자에 대한 조사도 일절 없이 강씨와 박씨의 대면조사를 진행한 뒤 박씨의 죄를 벗겨 줬다. 반면 강씨는 박씨에게 당한 무고죄 고소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강씨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형사들이 저를 형제복지원에 먼저 데려가더라고요. (박씨가) 화를 내면서 앞에 있는 재떨이를 저한테 집어 던지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진정, 고발을 취하하라’는 얘기를 나눴던 것 같습니다. 박인근이 형사들도 다그치는 모습을 보고 ‘여기(형제복지원)는 경찰 등 기관에서 협력하는 곳이구나, 비호를 받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일 <한겨레>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피해자들에게 보낸 464쪽 분량의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결정서’ 전문을 보니, 정부와 부산광역시, 경찰 등이 수용자들이 당한 폭력과 인권침해를 묵인·은폐한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지난 14일 피해자 20여명은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사무실을 직접 찾아 형제복지원의 1차 진실규명 결정문을 수령했다. 앞서 지난 8월24일 진실화해위는 피해자 191명에 대한
1차 진실규명을 결정하며 “국가는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강씨가 문제제기한 지 40년 만에 국가가 이들을 공식 피해자로 인정한 것이다.
1987년 박인근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사건을 축소하는 시도는 계속됐다. 그가 구속된 뒤 부산시는 “정신적·신체적(으로) 불건전한 비정상인들을 우리 사회에 방치하면 가정이 말할 수 없는 파탄에 빠질 것이고 외국인과 관광객에게 수치스러운 현상을 보일 것”이라며 강제수용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부산시는 이런 인식 속에서 형제복지원을 상대로 개별적인 진정, 소송을 제기하려는 이들을 회유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사례를 보면, ㄱ씨는 1986년 4월 길에서 술을 먹다가 경찰에 의해 형제복지원으로 인계됐다. ㄱ씨가 퇴소 뒤 이듬해 부산시에 억울함을 호소하자 시는 동향보고 문건에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향후 예상되는 ‘문제’로 기재했고, 대책으로 “국가 피소 등 불명예를 미리 막기 위해 순화활동”을 꼽았다. 실제로 부산진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ㄱ씨를 만나 면담했고, 부산시 보건사회국 공무원도 ㄱ씨를 만나 “차후 진정, 고발 등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수용자들을 동원해 부산시 주례동 국유림에 형제복지원 시설을 짓고 있는 공사 현장 모습.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제공
10살에 끌려갔던 딸의 아버지 ㄴ씨 사례도 있다. ㄴ씨는 관계자 처벌을 요구하며 1987년 2월 부산지검 울산지청에 형사 고소를 했는데, 그 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등을 만난 정황도 드러났다. 부산시 공무원이 ㄴ씨를 면담하고 남긴 문서를 보면 “안기부와 방첩대에서 (ㄴ씨를) 오라 해서 회사차로 갔다고 했음. 대담 내용은 (딸) 유괴 경위와 찾은 경위를 말했다고 함”이라고 적혀 있는데, 진실화해위는 이를 토대로 “안기부, 방첩대까지 동원돼 고소 취하를 압박한 정황이 있다”고 봤다.
1960∼80년대 제2·3의 형제복지원이 어디에든 있었을 거라 추측되는 대목도 있다. 박씨가 기소되자 전국의 사회복지시설 운영자들은 선처를 구하는 진정서를 냈다. 이들은 “(박씨가) 20년 이상을 부랑인 복지에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공로를 참작해 달라”며 “부산시와 맺은 계약에 따라 내무부 훈령 제410호의 ‘부랑인 단속 및 지침’에 따라 수용보호한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당시 운영했던 사회복지시설은 부산에서만 51곳, 그 밖의 지역(18곳) 시설을 합하면 모두 69곳이다.
천성원(대전시)과 경남종합복지원, 성혜원(경기 수원시) 쪽은 당시 박씨의 특수감금 혐의 근거로 제시된 ‘자물쇠로 출입문을 잠가 도주하거나 이탈하지 못하도록 한 행위’가 “다른 대부분의 시설에서도 있는 일이므로 처벌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의견서도 따로 제출했다.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의 행위가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기 위한 진정이지만 “오히려 다른 시설도 형제복지원과 동일한 인권침해를 자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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