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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무조건 순천향으로…14명 사망 감당 가능한 병원에 70여명 몰려

등록 2022-12-23 09:00수정 2022-12-23 23:09

[이태원 국정조사 풀어야 할 의혹들] ④더 살릴 수는 없었나
10월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29일 서울 이태원 한복판에서 150명이 넘는 젊은 목숨이 스러진 지 50여일이 지났다. 예고된 참사를 대비하지도, 막아내지도 못한 정부의 재난 책임자 가운데 책임지고 물러난 이는 한명도 없다. 여야는 지난달 23일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에 합의했지만, 내년도 예산안 협상 지연과 국민의힘 불참으로 공전하다 지난 21일에야 첫 현장조사에 나서며 정상화했다. 참사의 윗선을 그대로 두고 진행 중인 경찰 수사가 신뢰성을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조사 기간은 전체 45일(1차 시한 1월7일) 중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국정조사 대상에 오른 기관별로 규명해야 할 핵심 의혹들을 짚어봤다.

재난 상황에서 의료·소방 당국은 중상·경상자, 사망자의 순서로 사상자를 의료기관에 이송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에서는 사고 직후부터 순천향대병원(용산구 한남동)에 70여구의 주검이 몰리는 등 이런 재난 응급의료 원칙이 무너졌는데, 참사 현장에서 응급의료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은 원인도 진상을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22일 의료·소방 당국의 설명을 종합하면, 10월29일 이태원 참사 때 현장에서 심정지된 사망자 125명 중 76명(61%)은 순천향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사망자들은 대부분의 중·경상자가 의료기관으로 이송되기 전인 밤 11시24분께부터 119구급차를 통해 이곳으로 옮겨졌다. 심폐소생술(CPR)을 받던 중환자 3명이 추가로 사망하면서 이 병원에는 총 79명의 사망자가 집중됐다.

최대 14구의 주검을 수용할 수 있는 순천향대병원은 10월30일 새벽 1시30분께부터 포화상태가 됐다. 영안실 내부가 아닌 장례식장 복도에도 주검이 뉘어졌고, 응급실에서 중환자 치료에 집중했어야 할 의료인력이 주검 관리에 투입됐다. 의료진은 병원에 도착하는 구급대원들에게 ‘더 이상 주검을 받을 수 없다’고 알렸지만, 이후에도 구급대 지휘책임자인 용산소방서장은 “지연환자(심정지자)는 다른 병원 말고 순천향대병원으로 이송하라”는 무전을 반복하는 등 의료·소방 간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

현행 ‘보건복지부 재난응급의료 비상대응 매뉴얼’은 소생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중·경상자가 모두 이송된 다음 사망자를 이송하도록 하고 있다. 현장 응급의료소에서 재난의료지원팀(DMAT·디맷)이 환자의 사망 여부와 중증도를 분류하면, 119구급대가 이들을 인계받아 여러 병원으로 분산해 옮겨야 한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서는 응급의료소가 사고 발생 2시간48분 뒤인 30일 새벽 1시3분에야 세워졌다. 대다수 구급대원은 의료진을 만나지 못한 채 환자 중증도를 스스로 판단해 이송해야 했다.

의료체계가 무너진 데는 현장 의료소장을 맡았어야 할 최재원 용산구보건소장의 안일한 대응 탓도 컸다. 그는 10월29일 밤 11시30분 최초 사고 현장 주변에 도착했지만, 사고 현장에 즉시 진입하지 않고 구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애초 용산구청은 최 소장이 “경찰에게 통제를 당해” 바로 진입할 수 없었다고 둘러댔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겨레>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나서야, “인파가 많아 스스로의 판단으로 구청에 돌아갔다”고 국회 등에 실토했다.

유인술 충남대 교수(응급의학)는 “현장 응급의료를 지휘할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디맷 소속 의사 등 의료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현장 응급의료소장을 맡는 등의 매뉴얼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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