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가 걸어온 길은 외롭고 힘들었지만, 그는 불굴의 의지와 사색을 통해 삶의 굴곡 속에서도 자기를 지켜왔다. 지난 12월 춘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웅정씨의 얼굴에 연꽃 같은 미소가 빛나고 있다.
아빠에서 매니저로, 이젠 축구 철학자로.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손축구아카데미 대표를 직접 만나 얘기하면서 느낀 것은 ‘밝고’ ‘거침없는’ 기운이다. 그것은 구속됨이 없는 자유의 분위기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쟁취한 것이다. 삶의 도전에 정면대결을 펼치며 얻은 지혜라고 할까. 그는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라는 책에서 사색의 결정체들을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글과 말은 언어의 한계에 갇혀 있으니, 2022 카타르월드컵 기간 잠시 귀국한 그를 춘천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살아라, 슈드(Should) 말고 원트(Want)의 삶
가장 큰 궁금증은 아들 손흥민의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3차 포르투갈전 결승골 도움주기. 손흥민은 후반 추가시간 중앙선 아래서부터 공을 잡아 치고나간 뒤, 상대 수비수 3명의 견제를 뚫고 황희찬에게 절묘하게 패스해 2-1 역전승의 밑돌을 놓았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안와골절 부상을 당한 손흥민을 조별리그 3경기에 풀타임 출전시킨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준 순간이었다.
손흥민이 3일 오전(한국시각)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포르투갈 경기에서 포르투갈의 문전에서 황희찬에게 패스하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가 대화 중 아들 얘기가 나오자 환하게 웃고 있다.
“내 아들 슈퍼스타 아니다”라고 말하는 손웅정 대표도 이 대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아들 바보’가 됐다. “세계적인 수비수들 사이에서 공을 지키고, 황희찬이 오길 기다렸다가 상대 가랑이 사이로 공을 넣어준 것은 큰 대회 경험이 많기 때문에 가능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23골)에 올랐고, 카타르월드컵에서 ‘불멸의 도움주기’로 한국을 월드컵 16강으로 이끄는 등 빛나는 플레이를 펼쳤다. 아직도 “10%만 더 성장했으면…” 하고 바라는 게 아버지의 심경이지만, 손흥민은 월드스타다. 그런 아들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것은 희생이 아니었을까.
손웅정의 답변은 달랐다.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를 위해 밤새 타 본 적이 있는가? 불사른 적이 있는가? 나는 아들을 위해서 내 인생을 헌납한 게 아니다. 누구라도, 무엇이든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똑같이 했을 것이다.”
‘독종’ ‘또라이’로 불리는 그의 행동의 바탕에는 강한 “자기애”가 있다. 심지어 “나는 자기애에 빠진 이기주의자”라고 말한다. 그의 고백처럼 비바람과 추위, 가난 속에서도 아들을 위해 온갖 수고로움을 감내한 것은 “슈드(Should)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원트(Want)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자기존중에서 나온다. “간장 하나 놓고 먹더라도, 빚은 죽을 힘을 다해서 갚는다”는 그의 말 속에도 지독한 자존심이 배어 있다.
그 힘이 손웅정을 이단아로 만들었다. 그는 평생 구부러진 것을 참고 넘어가지 못했다. 주류가 판을 지키려 한다면, 늘 비주류 편에 섰다. 새판을 짜는 그의 독특함은 이미 나이별로 세분화해 아들을 가르친 그의 훈련 프로그램에서 드러난 바 있다. 손흥민은 기본기 훈련에만 수년을 쏟았고, 슈팅과 근력 훈련 등은 17~18살에 이르렀을 때 시작했다.
손웅정 대표는 “하루 쉬면 본인이 알고, 이틀 쉬면 가족이 알고, 3일 쉬면 관객이 안다”라며 쉼 없는 연습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린 고사리 다루듯 아들의 부상 방지를 위해 남들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비법을 채택한 것 또한 개척자다운 모습이다. 바로 근육 마사지다.
그는 “비 새는 중고 프라이드 차를 끌고 다녀도 흥민이의 마사지 비용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기름값 다음으로 챙겨놨다”고 했다. 아들 마사지에 신경을 쓰는 학부모는 요즘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버지의 혁신적 사고가 2015년 프리미어리그 이적 뒤 거의 풀타임을 뛰고, A매치를 위해 최장거리를 이동하는 손흥민이 한결같은 활약을 펼치는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손흥민의 개인 마사지 트레이너인 안덕수씨는 카타르월드컵 때도 동행했다. 손웅정은 “기계도 닦고 조이고 기름 친다. 근육의 미세한 염증을 잡아내 선수가 피곤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되면 부상 가능성이 낮아지고 경기력이 올라간다. 제발 자식 프로 되면 돈 벌겠다는 생각 말고 마사지에 투자해라. 성공은 선불이다”라고 조언했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가 외유내강의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손웅정 대표는 아들을 슈퍼스타로 키우려고 가르치지 않았다. “현재가 중요하다”며 아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하지만 미래 없는 현재는 반쪽이다. 그는 “삶은 지금이다. ‘인무원려 필유근우’라는 말처럼, 멀리 내다보지 않으면 가까운데 근심이 생긴다.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간 수백권의 책을 읽고, 좋은 문구를 새기며, 때로는 아들에게 줄 친 대목을 보여주거나, 대화 중에 넌지시 ‘삶의 자세’를 알려주는 이유는 삶은 부분이 아니라 총체라는 생각 때문이다. 두 극단인 유혹과 게으름은 경계하면서 어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혼자 생각하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손웅정 대표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창의력과 실행력, 디테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리더에게는 큰 서재가 필요하고, 패배자의 손에는 큰 리모컨이 남는다. 검색하지 말고 사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와 대화하면 새겨볼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부지런한 자는 한 일로 평가받고, 게으른 자는 하지 않는 일로 평가받는다.”
“나이가 들어서 열정이 없는 게 아니라, 열정이 없어서 나이가 든다.”
“일류가 판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특류(비주류)는 새판을 짠다. 기왕이면 특류가 돼야 한다.”
이런 말은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종 결론은 언제나 한 단어 ‘겸손’에 수렴된다.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오로지 겸손만이 최고의 미덕이다.” 손흥민의 올 시즌 득점이 저조해도 그는 걱정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난 시즌 득점왕이 됐을 때 내심 기뻐하지도 않았다. 그는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내려갈 때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이런 말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손웅정 대표는 “흥민이가 그래도 잘 이해해 준다. ‘잘하고 못 하고를 초월하라’고 말하면 흥민이가 ‘네, 아빠’라고 답한다”고 소개했다. 말하지 않더라도 “욕심 버리고, 마음 비우고, 몸에 힘 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서로 안다.
그것은 축구 한길만을 파온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자신감에서 나온다. “돈과 기회는 필요에 답하지 않고, 능력에 답한다. 준비된 자만이 가질 수 있다.” 뿌리를 튼튼히 하는 데 5년을 보낸 뒤 쭉쭉 뻗어가는 대나무처럼, 아들이 부상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축구하는 게 그의 새해 바람이다.
춘천/글·사진 김창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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