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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스토킹 가해자에 고작 ‘1m 이내’ 접근금지 결정 내린 법원

등록 2023-01-03 06:00수정 2023-01-03 19:28

스토킹처벌법에 명시된 100m 이내 접근금지
법원·검찰, 현실적 이유 들어 1m·10m 이내로
전문가들 “스토킹 피해자 보호 어려워” 지적
지난해 9월14일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신당역에서 지난해 9월18일 오전 화장실 들머리에 마련된 추모의 공간이 추모의 메시지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사진은 여성화장실 표시와 메시지를 다중노출기법으로 찍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해 9월14일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신당역에서 지난해 9월18일 오전 화장실 들머리에 마련된 추모의 공간이 추모의 메시지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사진은 여성화장실 표시와 메시지를 다중노출기법으로 찍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웃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툰 일이 도화선이었다. 서울 강서구의 한 복도식 아파트에 살던 ㄱ씨는 2018년 3월 아래층에 사는 ㄴ씨와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툰 뒤, ㄴ씨의 지속적·반복적 괴롭힘에 시달렸다. 늦은 밤 또는 이른 아침에 ㄴ씨는 ㄱ씨 집에 가서 현관문을 발로 차거나, 복도를 향해 난 창문을 열고 집안으로 무단침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참다못한 ㄱ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서울남부지법은 2021년 11월 초 스토킹 가해자 ㄴ씨에게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말 것과 연락하지 말라는 내용의 잠정조치를 결정했다. 잠정조치란 스토킹 범죄의 원활한 조사나 피해자 보호를 위해 법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내리는 결정으로, 가해자에게 △서면 경고 △100m 이내 접근금지 △연락 금지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의 제재를 할 수 있는 조처다. 스토킹 처벌법(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법원이 결정한 접근금지 거리는 100m 이내가 아닌 ‘1m 이내’였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잠정조치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접근금지 거리를 성인 허리 높이 정도인 1m로 정한 것이다. 법원이 든 이유는 ‘가해자가 피해자 집 아래층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100m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면, ㄴ씨가 자신의 집에 살 수 없다는 것이 법원 판단의 취지였다. ㄴ씨는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지난해 3월 불구속 기소돼 그해 6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스토킹 처벌법은 수사기관과 법원이 스토킹 가해자에게 피해자나 그 주거 등으로부터 100m 이내의 접근금지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1m 또는 10m 이내 접근금지 조처가 현장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100m 밖으로 떨어뜨리는 조처가 가해자의 주거, 노동 등을 고려한 법원과 수사기관의 판단으로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2일 <한겨레>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스토킹 사건 기록을 확인한 결과다.

또 다른 사례를 보면, 대전지검은 2021년 11월 말 스토킹 가해자 ㄷ씨에게 경찰이 적용한 긴급응급조치를 법원에 사후승인 청구했다. 긴급응급조치는 스토킹 범죄 예방을 위해 경찰이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을 긴급하게 내릴 수 있는 조처다. 다만, 이 경우 경찰은 검사에게 해당 긴급응급조치에 대한 사후승인을 법원에 청구해 줄 것을 신청해야 한다. 검찰은 사후승인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ㄷ씨가 피해자 또는 그의 주거 등에 접근해서는 안 되는 거리를 100m 이내가 아닌 ‘20m 이내’로 정했다. ㄷ씨와 피해자가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정이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ㄷ씨는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접근금지 거리가 100m보다 짧은 거리로 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한다. 검찰 관계자는 “(스토킹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파트 위아래 층 또는 옆집에 살거나, 같은 학교나 직장에 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접근금지 거리를 100m로 설정하면 (가해자에게) 집에 들어오지 말라거나 학교나 직장에 다니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며 “접근금지라고 해서 무조건 100m 이내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통상 20m 이내, 10m 이내로 설정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말했다.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사람의 거주 자유를 긴급응급조치, 잠정조치와 같은 임시조치로 제한하는 것은 어렵다는 취지다.

하지만 반론도 나온다. 접근금지 거리를 짧게 설정하면, 피해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다. 최유연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폭력 피해가 발생할 때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원칙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피해자가 자신의 주거와 직장 등에서 가해자와 계속 한 공간에 머무는 것은 피해자 보호도 되지 않을뿐더러, 가해자 처벌도 제대로 된 것이라 할 수 없다”며 “피해자를 범죄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수사기관과 법원이 인식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탄희 의원은 “1m 잠정조치는 탁상공론의 전형이다. 가해자가 피해자 1m 앞까지 오면 추가 범죄 피해를 예방할 수가 없다”며 “판사와 검사 모두 피해자 보호를 우선으로 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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