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사주’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지난해 11월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발사주’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공판에서 이 사건에 연루된 김웅 국민의힘 의원 무혐의 처분 과정에 있었던 석연찮은 수사 과정이 하나씩 공개되고 있다. 지난해 10~12월 진행된 다섯차례 공판에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검사의 증거인멸 의혹, 검찰 수사팀의 허위 보고서 작성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들 의혹은 모두 사건 초기 수사에 참여한 검찰 수사관들의 재판 증언 과정에서 시작됐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사 동일체’ 조직 논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수사관들이 본인들에게 책임이 돌아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검찰의 수사 결론과 다른 진술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고발장을 접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사건 기록을 검토한 뒤 본격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검찰 초기 수사팀, 고발장 ‘손준성→김웅→조성은’ 전달 결론
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2021년 9월 고발사주 의혹을 최초로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는 이 사건 고발자 조성은씨의 휴대전화에 있는 ‘손준성 보냄’ 텔레그램 메시지는 손 검사가 최초로 발신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수사팀은 조씨와 수정관실 소속 임홍석 검사의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손준성 보냄’ 속 고발장 등 파일 생성자의 텔레그램 아이디가 손 검사의 아이디와 일치하는 점을 파악했다. 또한 텔레그램 시연 과정에서 ‘손준성 보냄’ 메시지를 누르면 손 검사의 텔레그램 프로필이 연동되는 점도 확인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최강욱 민주당 의원 등 야권 인사들을 상대로 한 고발장과 <채널에이(A)> 강요미수 의혹 사건의 제보자 지아무개씨의 실명 판결문 등의 최초 발신자는 손 검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시 수사팀은 메시지 속 첨부 파일이 검찰 내부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의심할만한 다수의 정황도 확인했다. 우선 수사팀은 임 검사와 당시 수사정보2담당관 성상욱 검사가 2020년 4월3일 오전 9∼10시에 지씨의 판결문을 조회한 점을 확인했다. 손 검사가 지씨 실명 판결문 3건을 텔레그램으로 전송하기 10분 전이었다. ‘손준성 보냄’ 속 지씨 페이스북 캡처 사진과 일치하거나 유사한 사진이 2020년 7월 대검 형사부가 만든 ‘지씨 관련 검토의견서’에 담긴 점도 확인됐다. 관련 자료들이 수정관실 문턱을 넘어 대검 전반에서 활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검찰발’ 자료로 의심되는 고발장 등이 손 검사를 통해 김 의원에게 전달한 게 아니냐는 정황도 있다. 2020년 4월 김 의원은 조씨에게 ‘손준성 보냄’ 메시지 전달 전후 그에게 전화해 “고발장 초안은 저희가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 “(검찰이)받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받는 것처럼 하고” 등의 발언을 했다. 김 의원이 사전에 고발장 접수를 검찰과 협의했다고 추정할만한 정황이다.
지난달 19일 손 검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초기 수사팀 소속 ㄱ수사관은 ‘수사팀이 고발장 초안 등이 손준성→김웅→조성은에게 전달된 사실관계를 확정했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맞다”며 “(수사)보고서 내용을 읽으면 충분히 그렇게 결론이 난다”고 답했다
김웅 불기소는 짜맞추기?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의혹
손 검사 공판에선 김 의원을 불기소 처분한 검찰 후임 수사팀이 허위로 면담 보고서를 작성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 보고서엔 김 의원 불기소 처분의 주요 논리가 담겼는데, 정작 면담에 참여한 당사자가 공판에 나와 자신의 진술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 것이다.
이희동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 부장검사는 지난해 8월29일 포렌식 전문 ㄴ수사관과 면담한 뒤, 함께 배석한 ㄷ수사관이 작성한 면담보고서를 검토하고 직접 날인했다. 문답표 형식으로 정리된 이 보고서엔 △텔레그램 파일 전송 시간 관련 문의 △‘손준성 보냄’ 메시지가 조씨에게 전달될 경우의 수 △메시지의 최초 전달자가 손 검사가 아닐 수 있는지 여부 등 세 가지 질문에 대한 ㄴ수사관의 답이 담겨있다. ㄴ수사관은 고발장 전달 경우의 수를 묻는 질문에 대해 ‘손준성-제3자-김웅-조성은’ 등 제3자가 개입된 경우를 포함된 “4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최초 전달자 관련 문의에 대해선 “손 검사가 최초 전달자가 아닐 수 있다. 최초 전달자라고 해도 파일을 작성했다는 의미가 아니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기재됐다. 김 의원뿐만 아니라 손 검사의 혐의 역시 단정할 수 없다고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다. 이후 이 부장검사는 지난해 9월 고발장 전달 과정에 ‘제3자 전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김 의원을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나 지난달 5일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ㄴ수사관은 면담 보고서에 적힌 자신의 답변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는 ‘손 검사가 최초 전달자가 아닐 가능성에 대해 이 부장검사와 대화한 적 있는지’ 묻는 손 검사 쪽 변호인의 질문에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 이에 놀란 공수처 검사가 ‘제3자 개입 가능성 질문을 받은 적 없냐’고 재차 확인했지만, 그는 “없다. 오히려 물어봤으면 내용을 몰라서 설명드릴 수 없다고 했을 것이다”고 답했다. 손 검사 쪽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면담보고서 관련 증인 신문에 나섰지만, 되레 허위 작성 의혹이 증폭된 것이다.
이로 인해 김 의원 불기소 처분의 적정성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검찰이 김 의원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결론을 내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해 5월 김 의원을 사건을 공수처로부터 넘겨받은 검찰 수사팀은 김 의원을 한 차례만 불러 조사했고, 손 검사에 대한 추가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검사들의 증거인멸? 하드포맷‧안티포렌식 앱 설치도
공판 과정에선 고발사주 관계자들의 증거인멸 의혹도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는 2021년 9월2일 오전 고발사주 의혹을 최초 보도했는데, 그날 밤 8시 임 검사는 사무실에서 피시(PC) 하드디스크를 포맷했다. 10여일 전 이미 수정관실 피시 25대가 교체된 상황이었음에도 재차 포맷에 나선 것이다. ㄱ수사관은 지난달 19일 공판에서 “(임 검사가) 피시를 분해해서 (포맷) 작업을 했는데 이건 드문 케이스다. 검찰에 정보통신과도 있는데 밤 8시가 넘은 시간에 검사가 피시 분해하는 건 이례적이라 (담당) 검사에게 보고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임 검사는 대검 감찰 조사 전후로 안티 포렌식 앱(삭제된 디지털 정보를 복구 못하게 막는 앱)을 설치한 이력도 드러났다. 임 검사는 2020년 11월25일과 2021년 9월11일‧12일에 각각 안티 포렌식 앱을 설치했다. 2020년 11월25일은 대검 감찰부에서 ‘판사사찰’ 의혹과 관련해 수정관실을 압수수색한 날이고, 2021년 9월11일은 공수처가 손 검사 등의 사무실을 압수수색에 나선 다음 날이다. 9월12일은 임 검사가 대검 감찰부에서 조사를 받은 당일이다. 이를 두고 ㄱ수사관은 “통상적이라곤 할 수 없다. 의심스러운 상황이다”라면서도 “(사건이) 저렇게 빵빵 터지면 (대비 차원에서라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앱 설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법정 증언하기도 했다.
한편, 검찰 수사팀의 결론과 다소 배치되는 듯한 수사관의 잇단 증언을 두고는 검찰 안팎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한 검찰 간부는 “검사에 비해 증언 등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적어 비교적 자유롭게 본인들의 수사 내용과 판단을 근거로 증언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검찰 수사관은 “법정에 나가 거짓으로 말하면 위증으로 처벌을 받는다. 공직자 신분인 수사관들이 있는 그대로 진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시민단체는 각각 허위 공문서 작성과 증거인멸 등 의혹으로 검사들을 공수처에 고발한 상태다. 허위 공문서 작성 의혹을 수사하는 공수처 수사3부(부장 김선규)는 고발사주 공판팀에서 자료를 넘겨받아 검토에 나섰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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