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택배노동조합 대표들과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시민단체 대표들이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행정법원 정문앞에서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판결에 환영하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씨제이(CJ)대한통운이 간접고용 상태인 택배기사들과의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특수고용직 등을 활용한 간접고용 사업장에서 원청의 교섭의무가 보다 광범위하게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의 교섭 불응을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정용석)는 12일 씨제이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앞서 중노위는 씨제이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사용자에게 부여되는 성실교섭의 의무를 어긋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한 바 있다. 씨제이대한통운은 하청업체인 택배 대리점에 노무를 제공하는 택배기사들과 교섭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중노위에 이어 1심 재판부 역시 원청이 택배기사들과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한 셈이다.
택배노조는 2020년 3월 씨제이대한통운을 상대로 ‘1인당 1개 주차장 보장’ ‘주 5일제와 휴일·휴가 실시’ 등 6가지 사안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씨제이대한통운은 자신들은 고용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했다. 이에 택배노조가 구제를 신청했고 지방노동위원회는 씨제이대한통운의 손을 들어줬으나, 중노위는 판단을 뒤집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원청 사용자가 간접고용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부분에서는 단체교섭의 당사자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번 판결은 원·하청 고용관계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에 2·3심까지 법정 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판장이 주문을 낭독한 뒤 택배노조 관계자들은 환호했다.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이제 교섭하고 대화하고, 합리적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첫걸음을 떼보자”고 촉구했다. 택배노조를 대리한 조세화 변호사(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법률원)는 “노동조건과 관련해 실제적인 권한과 대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가 교섭 상대인 것은 너무 당연하다”면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간접고용된 많은 노동자가 실질적 권한이 있는 원청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폭넓게 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씨제이대한통운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은 1심 판결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판결문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 항소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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