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 김은혜 홍보수석(왼쪽), 안상훈 사회수석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브리핑실에서 노조회계 투명성에 대한 대통령과의 만남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정부가 조합비 회계장부 제출을 거부한 노동조합에 대한 과태료 부과 및 세액공제 혜택 배제 등 압박을 이어가는 가운데, 회계장부 제출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조항과 대법원, 헌법재판소 판례를 토대로 법적 근거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법조계에서는 “법 취지와 상반된 해석”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노조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법적 근거는 △행정관청이 요구할 경우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한 노조법 제27조와 △조합원이 열람할 수 있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에 회계장부가 포함된다고 본 법원 판결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행정관청이 요구할 수 있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에 회계장부도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노동법 전문가들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회계정보 공개의 근거로 삼는 대법원 판결은 한국노총 산하 고속노조 조합원들이 “회계자료를 열람·등사(복사)하게 해달라”며 소송을 낸 사안이다. 당시 서울고법은 조합원의 열람권만 인정하고 복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조합원의 회계자료 열람은 “조합비의 운영을 조합원에게 공개하는 것은 조합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지만, 이를 복사까지 하는 것은 “조합원 아닌 자에게 노조 재정에 관한 장부가 유출될 우려가 있고, 이는 노조의 자주적 운영이 저해될 우려”가 있어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7년 2월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이 판결을 확정했다. 조합원 아닌 행정관청이 회계장부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정부 쪽 해석과는 정반대 논리다.
노동전담재판부 경력이 있는 한 법조인은 “해당 판결의 취지는 노조 자주성에 위해가 될 수 있으니 노조의 회계장부가 함부로 외부에 공개돼선 안 된다는 것”이라며 “정부의 해석이 노조법과 판례 취지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장도 “노조에 지배·개입할 수 있는 사용자와 정부로부터 자유롭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게 자주성의 본질인데, 정부는 판례 취지를 반대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노조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노조법 제96조에 대한 헌법재판소 합헌 결정도 과태료 처분 등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헌재의 판단 근거 중 하나는 자료제출 요구와 과태료 부과가 2008~2012년 5년 동안 각각 31건, 5건에 불과해 “침해 최소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당시 헌법소원을 냈던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현재 정부는 모든 노조에 대해 문제가 있다며 선제적으로 전수조사를 하겠다며 나서고 있다. 이는 명백한 권한 남용”이라고 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과)도 “한국과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에서도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하지 회계장부를 달라고 하지 않는다. 정부 방침은 사실상 노조에 개입하는 것으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87호 위반”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회계장부 제출 요구는 결국 법원에서 정당성 유무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정기호 원장은 “노동부가 과태료를 부과한다면 처분의 적법성을 다툴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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