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사실은 이렇습니다’를 내고 육아·출산 문제가 근로시간 개편과 연결된다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가 누리꾼들의 반발을 샀다. 고용노동부 네이버 블로그
맞벌이를 하며 30개월 아이를 키우는 김아무개(38)씨에게 하루 중 가장 애가 타는 시간은 오후 6시 퇴근 무렵이다. 주말 부부인 김씨는 평일 저녁엔 남편과 육아를 분담할 수 없어, 퇴근이 늦어지면 온전히 친정 부모님에게 신세를 져야하기 때문이다. 고령의 부모님도, 4살 아이도 김씨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걸 안다. 김씨는 “아이를 낳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건 노동시간이더라”며 “정부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확대’를 환영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도를 쓸 수 있을 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28일 윤석열 정부는 “국가가 육아를 책임지겠다”며 육아기 단축 근로와 아이돌봄 확대 등을 뼈대로 한 저출산(저출생) 대책을 내놨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육아친화적 노동문화 마련이 우선임에도 관련 해법은 빠졌다는 지적이다.
결혼·출산 계획이 없는 강보현(37)씨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답답하기만 하다.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일하는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겪는 성차별인데,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씨는 “육아 친화적이지 않은 노동문화에 대한 개선이 없는 한 신혼부부 주택 공급 등의 정책은 현실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며 “남성의 임금이 더 높아서 보통 여성이 육아휴직을 택하는데, 경력단절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왜 출산을 택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여성이 처한 노동 환경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이번 대책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아이를 낳으려는 프리랜서 정아무개(29)씨도 “여성은 모든 커리어와 삶을 내놓고 출산을 결심한다. 여성의 일자리나 삶을 개선할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도 출산을 결심할까 말까인데 단순 지원에 그친 정책들을 저출생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며 “정부나 정치권에서 여성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온라인에선 한주 최장 69시간(주 7일 80.5시간) 일할 수 있도록 한 ‘노동시간 개편방안’이 다시 회자되며, 장시간노동 국가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겠냐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나라에서 아이를 키워준다고 할 게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게 해줘야 낳는다”며 “(노동시간 늘리는 대신) 초등돌봄 8시까지 늘리고 어린이집에서 8시까지 봐준다고 홍보할 게 아니라 가족끼리 안정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를 부모가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지난 27일 고용노동부가 올린 ‘근로시간 개편방안이 출산포기 등 저출산 문제가 연결된다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글을 비판하며 “성인이야 몇 주 걸쳐 초과근로를 하고 한 번에 몰아 쉬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융통성을 요구할 수 있냐”며 “결국 부모 둘 중 한 명은 일을 그만두라는 것이다”고 밝혔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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