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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이들 잃고도 돈, 돈, 돈…‘스쿨존’은 여전히 위험하다 [현장]

등록 2023-04-21 06:00수정 2023-04-21 13:05

스쿨존 사망사고 발생 5곳 확인해보니
“민원 때문에…” “예산 때문에…”
20일 아침 인천광역시 중구 신광초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신광초등학교 앞 횡단보도는 보행자 안전을 위한 어린이 보호구역 ‘노란색 횡단보도’를 시범운행 중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일 아침 인천광역시 중구 신광초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신광초등학교 앞 횡단보도는 보행자 안전을 위한 어린이 보호구역 ‘노란색 횡단보도’를 시범운행 중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빠아앙.’ 차갑게 내리는 비 사이로 화물차의 위협적인 경적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지난 18일 초등학생들의 등교 시간인 오전 8시30분. 인천 중구 신광초등학교 정문 앞 3차로를 대형 화물차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곳은 인천항과 고속도로가 연결되는 경로인 탓에 화물차가 끊임없이 학교 앞을 지나간다. 2021년 3월18일 이 사거리에서 9살 아이가 25t 화물차 앞바퀴에 끼여 숨졌다. 화물차는 3차로에서 우회전하게 되어 있지만, 운전기사는 직진 차로인 2차로에서 불법 우회전을 했다. 차체가 높은 탓에 운전기사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이를 보지 못했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고 이후 3차로와 바로 마주한 학교 정문을 옮기거나 육교를 설치하는 대안 등이 거론됐지만 관계 기관은 학교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걸려 있는 문제라 합의가 어렵다고 했다. 인천 중부경찰서 관계자는 “학교에 정문 이전을 요청했지만 ‘올해는 계획이 없다’고 했다”며 “육교는 과거에 있었지만 효용성이 떨어져 철거했다”고 말했다. 1학년 아이를 들여보낸 학부모 최현주(44)씨는 “이곳에서 사고가 자주 났기 때문에 오가는 차가 제일 걱정된다”며 “이 학교에 배정됐다고 하면 학부모들은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도림초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이지만 안전펜스가 없다. 곽진산 기자
영등포구 도림초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이지만 안전펜스가 없다. 곽진산 기자

화물차 사고로 9살 숨졌지만…여전히 쌩쌩

아이가 죽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2021~2022년 어린이를 특별히 보호하기로 약속한 공간 ‘스쿨존’에서 어린이 5명이 달리는 자동차에 치여 숨졌다. <한겨레>는 18~20일 사망사고가 발생한 스쿨존을 찾아 어떤 안전장치가 마련됐는지 살폈다. 일부 달라진 곳도 있었다. 하지만 5곳 가운데 4곳은 여전히 안전시설이 미비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한결같았다. “협의가 어려워서” “영업방해라는 민원이 있어서” “예산 사정 때문에”…. 돈, 돈이 문제였다.

화물차에 아이가 치여 숨진 뒤 구청은 인천 신광초 앞 횡단보도를 정비하고 안전펜스(울타리)를 쳤다. 하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사고의 근본 원인인 화물차 통행은 계속됐다. 하교 시간인 오후 1~4시에만 통행 허가증을 받은 대형 화물차가 통행하도록 하고, 나머지 시간대엔 전혀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마저도 최근엔 단속이 뜸해졌다. 우회로가 없다는 이유로 등교 시간 화물차 통행은 계속됐다. 화물차를 피하려던 승용차가 아이들의 길을 막아서는 것도 부지기수다. ‘안전속도를 준수합시다.’ 아이들 손에 들린, 구청에서 나눠 줬다는 노란 우산이 무색할 뿐이다. 경찰은 “거리가 너무 복잡해 모든 방향 신호등이 동시에 초록불로 바뀌는 식으로 신호체계를 바꿔볼지 논의 중”이라고 했다. 아이가 숨진 지 만 2년이 지났지만, 경찰은 여전히 ‘논의 중’이다.

■ “영업 방해” 민원에 펜스 설치 무산

18일 낮 1시 찾은 서울 영등포구 도림초 앞에는 펜스가 듬성듬성 설치돼 있었다. 스쿨존이지만 상점 앞 보도엔 펜스가 없었고, 횡단보도 주변에도 펜스가 없었다. 이곳에서도 2021년 7월27일 6살 아이가 차에 치여 숨졌다. 횡단보도는 새로 생겼지만, 펜스는 설치되지 않았다. 사고 이후 펜스 설치가 논의됐지만 주변 상인들은 “영업에 방해가 된다”고 반대했다. 신호등도 설치되지 않았다. 도로 너비가 8m로 좁아 되레 무단횡단을 유발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영등포구청은 과속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고 스쿨존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도로를 붉은색으로 포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단속카메라 사각지대에선 제한 속도(30㎞/h) 이상으로 차들이 달리고 오토바이들은 신호를 위반했다. 주민 ㄱ(62)씨는 “이곳에서 차에 부딪힐 뻔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니기엔 아직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학생 김아무개(11)양은 “펜스가 있다면 안전할 것 같다”고 했다.

평택시 청아초 정문 앞에 물류 운송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이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김가윤 기자
평택시 청아초 정문 앞에 물류 운송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이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김가윤 기자

지난해 7월7일 11살 어린이가 대형 굴착기에 치여 숨진 경기도 평택 청아초 앞 역시 여전히 대형 건설기계 차량이 오가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차량은 적었지만, 인근에 논과 공단이 있어 대형 차량이 종종 오간다. 당시 사고를 낸 굴착기는 스쿨존 안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달렸다.

사고 이후 과속방지턱을 추가로 설치하고 도로 반대편에도 펜스를 설치하는 등 시설을 보강했지만 ‘학교 앞이라는 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학부모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차량들은 속도를 올려 달리다 학교 근처에 와서야 속도를 급히 줄였다. 도로는 과속 방지를 위한 적색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았다. 평택시청 관계자는 “적색 포장은 예산 낭비라는 감사 지적 사항이 있어 횡단보도 인근에만 깔았다”고 말했다.

강남 언북초 후문 인근. 보도가 새로 설치되고 골목까지 적색포장이 깔려있다. 김가윤 기자
강남 언북초 후문 인근. 보도가 새로 설치되고 골목까지 적색포장이 깔려있다. 김가윤 기자

■ 청담동 언북초는 4개월 만에 탈바꿈

지난해 12월2일 9살 아이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 언북초 후문은 4개월여 만에 시설 정비를 대부분 마쳤다. 지난 19일 오후 2시께 확인한 통학로 인도에는 새 보도블록이 깔리고 펜스가 설치됐다. 후문 입구에 설치된 센서에서는 차량이 접근할 때마다 ‘차량 접근 중’이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차량이 진입하는 쪽으로는 ‘보행자 접근 중’이라는 알림이 떴다. 적색 포장이 인근 골목까지 확대됐고 통학로는 일방통행으로 바뀌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사고 이전엔 주민 반대가 많아서 보도 공사를 못 했는데, 사고 이후 안전이 중요하단 여론이 생기니 발 빠르게 추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2020년 1월 강남경찰서는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꾸려 했지만 주민 50명 가운데 48명이 반대해 무산된 바 있다.

언북초보다 한달여 먼저 경남 창녕군 영산초 인근에서도 9살 아이가 숨졌지만, 이곳 교문 앞 도로엔 여전히 인도도, 안전펜스도 없다. 창녕군청과 학교 쪽은 “정문 앞 도로 폭이 너무 좁아 보도나 펜스를 설치하지 못했다. 학교 부지를 이용해 도로를 넓혀야 해 협의하려고 한다”고 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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