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 한 주상복합건물 인근 주택 담장에 ‘피해보상’ 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표한 가운데, 피해자들은 “피해자 지정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보여주기식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대책위)는 27일 입장을 내어 “(정부의 특별법은) 피해자 지원대상으로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피해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며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라 피해자를 걸러내기 위한 법안”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방안을 보면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주택에 대한 경·공매 진행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주택 △수사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6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특별법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
대책위는 “지원대상이 이렇게 협소하게 적용되면 경매완료, 전출, 동시진행 등 불가피한 이유로 대항력을 상실한 피해자들은 아예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며 “1000채가 넘는 피해주택의 순차적인 경·공매 진행, 임대인의 상속문제 미해결 등으로 경매가 늦어지면 아예 지원대상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또 ‘서민 주택’ 기준을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했다. 주택의 전용면적과 보증금에 따라서 피해자 인정 범위가 달라질 수 있는데, 특별법은 이 기준을 하위법령으로 위임한 것이다. 이에 대책위는 “(시행령에서) 금액이 2~3억원 대로 한정되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대부분 제외될 수 있다”며 “이 규정은 삭제하거나 상한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다수의 피해자 발생 우려 시’ ‘보증금의 상당액 미반환이 우려되는 경우’ 등의 추상적인 기준 때문에 피해자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책위는 이번 특별법에 채권매입방안이 빠졌다는 점도 미흡하다고 봤다. 대책위는 “(특별법에 명시된) 매입임대도 그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서 실제 피해주택 중 얼마나 많은 주택을 매입할 수 있을지도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며 “채권매입방안도 빠지면 결국 법안이 통과되어도 정작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가 매우 적을 것”이라고 했다. 대책위는 공공(캠코 등)이 보증금 반환채권(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을 매입해 세입자를 먼저 구제하고, 추후 공공이 공매 등의 방법으로 채권매입대금을 환수하는 방법을 도입하라고 촉구해왔다.
대책위는 “이 법대로면 얼마나 되는 피해자가 특별법을 통해 지원을 받는지조차 알기 어렵다”며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실태와 현황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진행해서 대다수의 피해자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법안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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