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발생한 오피스텔 전세금 피해 의심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지난 27일 관련 피의자들의 주거지와 부동산중개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사진은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경기도 화성시 공인중개사무소 모습. 연합뉴스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검색창에 ‘에스레터’를 쳐보세요.
“경찰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죠. 경찰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해결을 해줍니까.”
전세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인천 건축사기단’ 남아무개(61)씨는 피해자들을 회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제시한 ‘현 실태와 해결대책 방안’ 문건에는 “법무부, 경찰, 허그(HUG·주택도시보증공사), 국토교통부 등의 도움은 법률 지원이나 임시 거처 제공(6개월) 정도. 근본적인 피해 보상이나 보증금 반환은 불가”라고 적혀 있다. 또 “임대인 부재 시 해결이 부재하다”며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구속되는 상황을 암시하며 “왜 같이 죽겠다는 것인가”라는 협박성 문구까지 넣었다. 보증금 반환 약속 없이, 피해자들이 경매로 주택을 사들여 공동주택으로 운영할 경우 행정안전부나 인천시로부터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며 ‘함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추가 투자 제안까지 했다.
남씨가 이렇게 수사당국을 비웃는 발언을 늘어놓은 시점은 자신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직후다. 지난해 12월 남씨를 포함한 일당 5명의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법원은 “기망행위가 있었는지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이를 기각했다. 결국 경찰은 피해 금액을 327채 266억원에서 163채 126억원으로 크게 줄였고 구속 대상도 남씨를 포함한 2명으로 줄여 두달 뒤 영장을 재신청했다. 전세 놓은 주택이 연쇄적으로 경매에 들어가기 시작한 지난해 1월로 범행 시작 시점을 변경해, 전세보증금 변제 능력이 없는데도 계약 체결한 부분을 사기 혐의로 가까스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공범인 공인중개사는 영장이 기각돼 남씨만 구속됐다.
전세 사기 임대인이 어렵게 구속돼도, 사기 혐의만으로는 범죄수익 환수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남씨가 당장 보증금 환수가 시급한 피해자의 사정을 악용해 “아무리 경찰에 신고해도 보증금 반환은 불가하다”며 회유와 겁박까지 한 이유다. 피해가 전국적으로 속출하자 정부는 조직적 전세 사기에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겠다고 나섰다. 사기 혐의로는 적용하기 어려운 ‘기소 전 범죄수익 몰수보전’을 위해서다. 남씨 일당의 남은 재산이 피해 액수에는 턱없이 모자라, 피해자들이 향후 법원에 배상 명령을 신청해도 떼인 전세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범죄단체조직죄가 반드시 적용돼야 하는 이유가 있다. 전세 사기는 절대 남씨 혼자 할 수 있는 범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원이라고 약하게 처벌해서는 전국으로 번지는 조직적 전세 사기를 근절하기 어렵다. 남씨는 기획공무팀, 중개팀, 주택관리팀 등을 두고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까지 가담시켰다. 현재까지 확인된 공범만 모두 61명이다. 특히 사회초년생 피해자들은 “안전하다는 공인중개사 말을 믿었다”고 말한다. 범죄단체로 인정되면 조직 내 지위와 상관없이 조직원 모두 남씨와 같은 형량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된다.
남씨가 정부와 수사당국의 대처를 비웃는 사이, 세입자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는 멈춰야 한다. 재발 방지도 필요하다. 선량한 이들의 주거 안정을 저해한 전세 사기단을 죄의 무게에 맞게 처벌해야 한다.
장나래 이슈팀 기자
w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