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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현장] 전세사기 동네는 썰렁한데 온라인엔 “당장 0원 계약”

등록 2023-05-01 06:58수정 2023-05-01 15:04

컨설팅업체 직접 연락해보니
30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 빌라 밀집 지역.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30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 빌라 밀집 지역.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전세사기 사건이 터진 뒤 연루된) 공인중개사랑 건축주들에게 경찰이 들이닥치니까. 이후로 거래가 잘 안돼서 부동산들이 문 닫고 영업 안 하는 경우도 많아요. 웃긴 건, 컨설팅 업체들은 아직도 한편에서 장사를 하고 있으니 현장 공인중개사들만 죽어나는 거죠.”(화곡동의 한 공인중개사)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는 사회초년생들에게 알맞은 저렴한 신축 빌라가 많아 부동산 거래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곳이었다. 이곳에선 불과 몇달 전만 해도 신축 빌라 분양 광고가 내걸리고, 손님을 모으려는 컨설팅 업체 직원 수백명이 활동했다. 하지만 ‘바지 임대인’을 내세워 무자본 갭투자로 수백채를 사들인 뒤 세입자들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빌라사기꾼’들의 주요 활동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대 부동산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지난 27일 <한겨레>가 찾아간 서울지하철 2·5호선 까치산역 인근 부동산 23곳 가운데 14곳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영업 중인 9곳 가운데 4곳은 불이 켜져 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고, 손님이 있는 부동산은 단 1곳에 불과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주변 부동산중개인은 건축주한테 건당 5천만원씩 알(R·리베이트) 받다가 경찰 수사 들어오고 이후 부동산을 폐업하는 일까지 있었다”며 “지금 분위기상 전세는 절대 안 나가고 매매도 의심하니까 안 나간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를 보면, 30일 기준 4월 서울 강서구 다세대·연립주택 전월세 거래건수는 457건(계약일 기준)으로 지난해 4월(1017건)에 견줘 거래량이 55% 줄었다.

얼어붙은 화곡동 일대와 달리, 신축 빌라 분양을 홍보하며 전세사기를 주도했던 분양 컨설팅 업체들은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겨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부의 전세사기 특별단속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컨설팅 업체들은 “갭투자 하실 분”, “신용불량·무직에 연체까지 있으신 분들 다 가능”, “업계 최대 수수료 1500~5000”, “본인 비용 0원” 등의 말로 온라인 홍보를 하며 ‘바지 임대인’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실제 <한겨레>가 온라인 투자 커뮤니티 등에 게시된 갭투자자 모집 글을 보고 연락을 취하자 “내일 바로 화곡동 빌라 계약이 가능하냐”는 답이 돌아왔다. 현재 부모님과 함께 거주한다는 말에 “인터넷으로 지금 바로 세대 분리가 가능하다”는 정보도 제공됐다. 갭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업체라고 밝힌 한 업체에서는 먼저 무주택 여부, 기대출, 국세·지방세 미납 여부, 회생·파산면책·신용회복 여부, 기초수급자 여부 등을 체크해달라고 했다.

무주택자임을 확인한 업체 직원은 계약을 망설이는 기자를 향해, 무주택자로 거래할 경우 계약 당일 100만원을 수수료로 주고, 매도 시 차익이 발생하면 일부 배분을 해주겠다고 강조했다. 매수·매도, 전세 계약까지 계약자가 들이는 돈은 한 푼도 없다고 했다. 최근 전세사기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자 “이중전세 계약도 아니고, 시세차익을 크게 남길 수 있는 물건만 전문가가 분석해서 들어가기 때문에 문제 생길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컨설팅 업체는 신용불량자여도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금융거래가 불가능한 신용불량자인데 가능하냐”는 질문에 업체 관계자는 “어차피 대출이 아니라 전세를 끼고 하는 거기 때문에 계약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압류만 안 들어오게 리스크 관리해주시면 가능하다”며 역시 이번주 계약을 유도했다.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한 건만 거래 트고 신뢰를 쌓으면 50채, 100채, 200채 단위 큰 계약 건도 바로 소개해드리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다음달 수도권에 오피스텔 5000채 매물이 나오는 게 있는데 60명 정도 모아서 나눠서 매입할 예정이다. 임대사업자 가입해서 6개월 뒤 바로 매각하시도록 건축주랑 얘기가 다 돼 있는 거고 매각까지 다 봐드리니 걱정할 게 없다. 50채면 계약 당시에만 3500만원을 벌어 간다”고 했다. 전세사기 우려에는 “지금 나오는 깡통전세는 고점에 사서 집값이 떨어져서인데 우리는 최근에 거래량이 늘고 있다. 가격이 내려올 만큼 저점으로 내려왔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현재 논란이 된 전세사기는 집값이 떨어져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었지만, 앞으로 집값이 오르면 시세차익을 통해 세입자의 전세금을 충분히 돌려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들이 제안한 매물 장소는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강서구 화곡동과 인천 미추홀구·부평구 일대였다.

경찰은 악성 임대인 수사가 강화되자 바지 임대인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사기 수법이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대위변제가 많이 이뤄지거나 보유 채수가 많으면 국토교통부에서 악성 임대인 수사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임대인을 많이 늘려서 한명당 주택 보유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흐름이 변하고 있다”며 “인터넷을 통해 조직적으로 임대인을 모으는 경우는 당연히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최근 경찰은 사기 매물을 중개한 플랫폼 업체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중소부동산 앱 업체 대표 40대 ㄱ씨를 사기방조 혐의로 입건했다. ㄱ씨는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서 벌어진 140억원대 전세사기 일당이 수차례 사기 매물들을 앱에 올리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한 혐의를 받는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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