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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마지막에 돌아선 이의 죄명은 ‘자살방조’…처벌 너머 치료 필요하다

등록 2023-05-02 07:00수정 2023-05-02 08:54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 ㄱ씨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만난 일행 3명과 경기도의 한 숙박업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ㄱ씨는 두려움을 느꼈고, 혼자 다른 방으로 이동하려고 하자 일행은 “신고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그들은 사망했다. ㄱ씨는 자살방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 ㄴ씨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난 ㄷ씨와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약속했다. 극단적 선택에 필요한 물품과 렌터카를 ㄴ씨가 준비했고, 둘은 승용차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숨지지 않았다. 다음날 두 사람은 다시 한번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고, ㄴ씨만 갑자기 겁이 나 승용차 밖으로 뛰쳐나왔다. 법원은 ㄴ씨의 자살방조 혐의에 대해 지난해 10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에서 10대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이 모습을 소셜미디어(SNS)에 생중계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지난 28일 해당 학생과 동반자살을 모의했던 남성을 자살방조죄로 입건했다. 현행법상 자살 행위는 죄가 되지 않지만, 자살교사·자살방조는 형법 252조에 의해 처벌받는다. 자살방조는 자살을 쉽게 해주는 행동만 해도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 경찰 통계연보를 보면, 경찰은 △2019년 36명 △2020년 41명 △2021년 42명을 자살교사·방조 및 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 자살방조 상당수는 ‘동반 극단적 선택’

대부분의 자살방조 사건은 ‘동반 자살’에서 출발한다. 2014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펴낸 ‘한국의 자살 발생의 사회적 요인에 관한 연구: 자살교사·자살방조’를 보면, 2004∼2013년 자살교사·방조 사건에서 가해자 범행 동기의 69%(75명)는 ‘함께 자살하려고 시도했다가 살아난 경우’였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사이트와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함께 자살할 사람을 구하는 것이 쉬워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 소장인 장형윤 아주대 교수(정신건강의학)는 “10여년 전부터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해나 극단적 선택은 고립돼서 하는 행위가 아닌, 인터넷상에서 쉽게 커뮤니티를 형성해 함께 시도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며 “진입장벽 자체가 청소년들한테 낮아지고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게 쉬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자살방조 사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다 미수에 그친 경우 ‘자살 고위험군’으로 보고 처벌보다 나아가 자살 예방 교육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자살은 재시도율이 높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2020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 결과’ 보고서를 보면, 2020년 한해 동안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을 찾은 이들 가운데 49%가 과거에도 같은 시도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ㄱ씨도 모르는 사람과 자살하려고 약물을 배송받다가 수사를 받은 전력이 있었다.

상담(치료)조건부 기소유예제도를 마약사범뿐 아니라 자살방조범들한테도 확대 시행하는 방안이 대책으로 거론된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서 자살교사·방조 사건 최종 판결의 57.7%가 집행유예이지만 기소유예 비중은 10.9%에 그친다. 하지만 관련 교육 수강이나 상담을 권하는 제도는 없다. 박형민 형사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본부장은 “자살방조 범죄자 역시 극단적 선택 미수자”라며 “상담·교육 등으로 자살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데도 현재는 본인이 거부하면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개입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법원이 집행유예와 함께 자살 예방을 위한 수강 명령을 선고하거나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할 때 상담조건부를 다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동반 극단적 선택 과정에서 범죄 노출도

한편, 인터넷상에서 함께 극단적 시도를 할 사람을 만나는 경우, 앞선 ㄴ씨 사례처럼 성폭력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10·20대가 취약하다. 2014년 온라인 동호회에서 알고 지낸 ㄹ(18)양과 동반 자살을 하기로 약속하고 만난 ㅁ씨는 ㄹ양과 자신이 모두 사망에 이르지 않자 ㄹ양에게 술과 수면제를 먹여 성폭행을 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동반 자살은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유해정보를 더욱 빠르게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종우 경희대 교수(정신의학)는 “고립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이들을 범행에 이용하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극단적 선택 징조가 보이는 경우 사전 구호 조치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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