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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스쿨존서 떠난 9살 아들, 친구들은 안 죽길 바라고 있을 것”

등록 2023-05-02 13:43수정 2023-05-03 01:18

유족 “남아있는 어린이 죽이는 음주운전
이런 사고 다시는 없도록 엄벌해달라”
검찰, 결심공판에서 징역 20년 구형
사고가 발생한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쪽 이면도로.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사고가 발생한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쪽 이면도로.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어린이보호구역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그 어떤 사망사고보다 중한 범죄로 판시해 이 사회에 다시는 이와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

강남 언북초 스쿨존 음주사고로 숨진 9살 초등학생의 부모가 가해자를 엄벌해달라고 호소했다. 검찰은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사고 현장에 48초가 지나 다시 돌아온 운수회사 대표 ㄱ씨(40)는 도주치사 혐의는 부인하지만 어린이보호구역치사, 음주운전 혐의 등은 인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최경서)는 2일 오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ㄱ씨의 결심 공판을 열었다. ㄱ씨는 2022년 12월2일 오후 4시57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어린이보호구역 교차로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128% 상태로 음주운전을 하다 초등학생 동원(9)군을 치어 숨지게 했다.

검찰은 “음주 교통사고 후 현장을 이탈해 적극적으로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사건으로 위법성이 매우 중하고 피해자 쪽 과실도 없다”며 ㄱ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도주 사건에 대해 최고 징역 23년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양형 기준을 상향한 점을 고려한 결정이다.

ㄱ씨는 2022년 12월2일 오후 4시57분 청담동 언북초 후문 근처 이면도로에서 좌회전해 자신의 집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동원군을 차로 치었다. 이후 21m 거리에 있는 자택 주차장까지 더 운전해 차를 세운 뒤 뛰어나와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조사됐다.

ㄱ씨가 사고 현장을 떠나고 돌아오기까지 48초가 걸렸다. ㄱ씨는 빗물 배수로를 넘은 것으로 착각해 숨진 동원군을 차로 들이받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112·119 신고는 현장을 목격한 주변 가게에서 했다.

피해자 동원군의 아버지는 법정에 출석해 가해자가 엄벌을 받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그날따라 더 큰 목소리로 ‘회사 잘 다녀오시라’고 했던 아이가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있었고 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며 “지금이라도 당장 ‘아빠’ 하고 돌아올 것 같다”고 말하며 오열했다.

또 “가해자가 사고 이후의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방치하고 떠나는 모습, 그 이후 아이를 구호하지 않고 방관하는 모습, 그리고 본 재판정에서 뺑소니 혐의를 부인하며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저희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ㄱ씨는 최후진술에서 “저는 세상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끔찍한 일을 저지른 죄인”이라며 “제 목숨을 내놓아서라도 아이가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며 허리를 숙였다.

선고공판은 오는 31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 피해자 가족 입장문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지난해 12월2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오던 중 음주 뺑소니 사고에 의해 하늘나라로 떠난 동원이의 아빠입니다. 아이의 신원을 파악하지 못하여 저녁 퇴근시간이 되어야 소식을 들은 저는 아닐 거라고 되뇌이며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날 따라 출근하는 저에게 더 큰 목소리로 그리고 더 깊이 고개를 숙이며 ‘회사 잘 다녀오세요’라고 했던 동원이가 차디찬 주검으로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고 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원이는 저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으며, 저의 부족한 점까지 작은 목소리로 조언해주는 속 깊은 아이였습니다. 독서광으로 지적 능력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졌기에 장차 커서 이 세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저희는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이런 꿈은 2022년 12월 2일 오후 4시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학교 후문을 나오던 중 음주 뺑소니 운전자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아득한 심연에서 더듬어가며 잃어버린 아이를 찾고 있는 막막함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 차례 동원이에 대한 생각이 날 때면 그리움이 성난 파도와 같이 밀려와 저는 그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목 놓아 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저희 가족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너무나 큰 절망과 고통 속에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아빠 하고 외치며 들어올 거 같아 우리는 동원이의 책, 장난감, 사진, 침구 어느 하나도 치우지 못하고, 매일 밤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이 메어져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동원이의 동생은 아직도 큰 충격에 그 사건을 인정하지 못하고 거부하는 상태이며 그 상처가 언제 터질지 몰라 저희는 노심초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매 순간 부정하고 싶지만, 우리 동원이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습니다. 허나 동원이의 평소 심성을 고려할 때 분명히 동원이는 동원이 동생, 친구,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하늘나라에서도 바랄 것이라 확신합니다. 남아 있는 가족, 친구를 죽이는 어린이 음주 사망사고는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우리 아이는 백주 대낮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던 중 학교 후문 앞 횡단보도에서 음주운전자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 가해자는 대낮에 제대로 운전을 하지 못할 정도의 만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여 학교 후문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우리 아이를 치고 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가해자가 사고 이후의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방치하고 떠나는 모습, 그 이후 아이를 구호하지 않고 방관하는 모습, 그리고 본 재판정에서 뺑소니 혐의를 부인하며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저희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 며칠 전에도 너무나 아름답게 생기 넘치던 아이가 추모공원에서 한 시간 반 동안의 화장 후에 하얀 백골이 되어 우리 앞에 나왔습니다. 그 오랜 화염 속에서도 동원이의 두개골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엄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움푹 들어간 자욱과 새끼 손톱 만한 두개골 파열이 저를 향해 사고 당시의 고통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두개골이 파괴될 정도로 역과하고 가면서 단차가 거의 없는 빗물배수로인 줄 알았다는 가해자의 변명은 저희를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부디 공정한 판결로 음주운전은 너무나 큰 범죄 행위이고, 뺑소니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선택이며, 이들이 결합된 어린이보호구역 사망사고는 그 어떤 사망사고보다 중한 범죄임을 판시하시어, 이 사회에 다시는 이와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제가 드리는 마지막 소원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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