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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피해자 반대에도 ‘국민참여재판 고집’ 조주빈…대법원 판단은?

등록 2023-05-18 07:00수정 2023-06-30 15:22

미성년자 등 여성 70여 명을 협박해 성 착취를 일삼아온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 ‘박사’로 불린 핵심 피의자 조주빈씨가 2020년 3월25일 오전 서울 종로 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미성년자 등 여성 70여 명을 협박해 성 착취를 일삼아온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 ‘박사’로 불린 핵심 피의자 조주빈씨가 2020년 3월25일 오전 서울 종로 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8)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여부를 대법원이 결정하게 됐다. 2021년 징역 42년을 확정받은 그는 지난해 9월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아도 국민참여재판은 열릴 수 있어 ‘2차 피해’를 막을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씨 쪽 변호인은 2022년 11월 1심 첫 공판 때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국민참여재판이란 무작위로 선정한 배심원이 유·무죄 및 양형을 평결하며, 법관이 그 평결을 참고해 판결하는 제도다. 다만 법관이 배심원의 평결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피해자 쪽은 국민참여재판에 반대했지만 조씨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맞섰다. 1심과 2심은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내렸고 조씨는 지난 12일 재항고장을 제출해, 대법원 판단만 남은 상태다. 피해자 쪽 변호인은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이 증거 기록을 다 본다. 피해자는 이 사건이 알려질까봐 불안해한다”며 “1·2심 법원이 피해자의 상태와 의사뿐 아니라 2차 피해 우려 등을 종합해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국민참여재판법 제9조는 성폭력 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 경우 법원이 국민참여재판 배제를 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6년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배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할 때는 △성범죄 피해자가 배제를 원하는 구체적인 이유 △피해자의 나이, 정신상태, 피고인과의 관계 △2차 피해 가능성 등을 고려해 결정하라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성범죄 피해자의 반대의사가 있는 경우에도 국민참여재판 결정을 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반대에도 조씨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이유는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사건 무죄율이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 ‘국민참여재판 성과분석’ 자료를 보면, 2008~2020년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 사건의 무죄율은 27.9%다. 살인(3.4%), 강도(8%), 상해(9.2%) 사건의 무죄율과 비교해 3~9배 높다. 사법정책연구원은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과 국민참여재판에서의 배심원 지침에 관한 연구’(2022년) 보고서에서 “성폭력 범죄의 특성을 고려해도 지나치게 (무죄율이) 높은 것은 성폭력 범죄를 재판하는 배심원들에게 성 고정관념이 있거나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라고 밝혔다. 미디어에서 접한 성범죄 사건은 대체로 ‘극적’으로 묘사되기에, 배심원은 ‘평범한 가해자’에 의한 성폭력을 범죄로 인식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피해자의 국민참여재판 거부권을 신설하거나 △공판 전에 배심원을 상대로 성범죄 사건 재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대안 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법무부 역시 “(피해자의 거부권을 신설할 경우) 피고인의 재판받을 권리를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고 재판 교육도 국민참여재판 취지에 반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판사들의 고민도 깊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성범죄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과 2차 피해 방지 사이에서 법원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며 “성범죄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 기회를 보장하되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는 장치를 고안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에서 활동하는 오선희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 받을 권리를 무조건 뺏기는 어렵다”며 “판사가 2차 피해 우려를 세심히 따져 국민참여재판 여부를 결정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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