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돌려차기 사건 항소심 공판에 시민들이 방청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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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이 신상공개 확대 방안을 주문하고, 여당도 신상공개 기준 완화와 대상 확대를 논의하겠다고 밝히면서 조만간 법안 개정 등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적 공분을 동력 삼아 신상공개의 문턱이 낮아질 소지가 커진 가운데, 구체적인 신상공개 절차를 대부분 경찰 비공개 지침에 기댄 규정 등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해자의 보복이 걱정된다면 신상공개 단계를 형 확정 이후에 맞추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현재 피의자 단계 신상공개 제도의 근거는 크게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두가지다. 이에 따라 살인·존속살해, 강간치사, 강간살인미수 등의 강력범죄 및 성범죄 중 ‘범행 수단의 잔인성’, ‘피해의 중대성’, ‘혐의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확인될 경우 피의자의 얼굴·이름·나이를 공개할 수 있다.
문제는 신상공개는 이뤄지면 되돌릴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인데, 각종 영장 발부 절차 등과 달리 구체적인 신상공개 절차가
경찰 비공개 지침에 따라 이뤄지고 있어 형평성과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경찰은 신상공개 대상이 될 흉악범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외부 위원들도 포함된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신상공개 여부와 공개 범위를 의결한다. 이때 경찰청 훈령인 ‘강력범죄 피의자 얼굴 및 신상 공개 지침’이 내부 기준점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전문가 참여 및 토론이 이뤄지도록 비공개 지침을 시행령 등을 통해 공론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광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변호사)은 14일 “구체적으로 범행의 잔인성이나 공공의 이익 등에 해당하는 세부 기준을 비공개 지침으로 둘 것이 아니라 위임 규정 등을 통해 시행령을 만드는 등 법령화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동종 전과 등에 가중치를 두는 등 개선 방안을 고민하려면 현재 어떤 기준으로 논의가 되는지가 공개돼야 전문가들이 개선책을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상공개가 시·도경찰청별로 나눠진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 결정으로 이뤄져 일관성과 형평성이 떨어진다며, 판단기관을 경찰청 인권위원회 등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의 기준 불일치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찰청 단위에서 위원회 구성원의 직업군과 성비 심위 기준 등을 형평성 차원에서 맞출 필요가 있다”며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외부 인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심의위는 경찰 내부 3명, 외부 전문가 4명 등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상 경찰이 도맡은 신상공개와 관련한 절차를 추가하고, 신상공개 시점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동욱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지금 진행 중인 심의위원회는 경찰의 결정을 정당화시키는 절차에 불과하다”며 “구속영장을 발부받을 때 신상공개 여부를 함께 통지받는 등의 추가 절차를 고려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 “피의자 신분이든 피고인 신분이든 유죄 판결을 받기 전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건 개인에 대한 명예살인일 뿐 그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피의자·피고인의 보복 우려 때문이라면 20년 뒤에 출소할 때쯤 신상공개를 하는 게 오히려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