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조선> 재승인 점수 조작 의혹으로 기소된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도봉구 북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기일에 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서울행정법원에서 완패했다. 행정법원은 ‘직무에 복귀하게 해달라’는 한 전 위원장의 요청을 “방송의 중립성·공정성을 수호할 중대한 책무를 맡은 방통위원장으로서 직무를 방임하고 소속 직원에 대한 지휘·감독 의무를 방기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행정법원은 형사재판에서 쟁점이 될 네가지 비위행위에 대해서는 대체로 구체적인 판단을 미뤘다. 26일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3부(재판장 이태웅) 심리로 처음 열린 한 전 위원장의 형사재판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검찰이 주장하는 한 전 위원장의 혐의는 크게 네가지다. ①‘내부 절차를 생략’하고 특정 심사위원이 선정되도록 개입했다는 게 첫번째 혐의다. 행정법원은 한 전 위원장의 면직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면서 “대체 심사위원이 필요한 경우 상임위원 간담회(내부 절차)를 거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절차를 건너뛴 것인지, 선택 사항을 생략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뜻으로 형사재판에서 한 전 위원장 쪽이 내세우는 논리와 비슷하다.
②<티브이조선>의 재승인 유효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줄이고, 이를 위해 허위의 법률자문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검찰 주장도 행정법원은 일단 받아들이지 않았다. 행정법원은 “유효기간이 반드시 ‘4년’이어야 하는지 단정하기 어렵다”며 “한 전 위원장이 허위 보고서 작성을 인식하거나 사전에 관여한 사실이 있는지 충분한 심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한 전 위원장이 ③재승인 충족 점수에서 과락 점수로 점수 조작이 된 사실을 알고도 경위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이후 절차를 진행했고, ④점수 조작을 은폐하려고 거짓 보도설명자료 작성을 지시했다고 본다. 행정법원은 이들 혐의의 전제인, ‘평가점수가 추후 부당하게 수정됐다는 사실을 한 전 위원장이 알고 있었다’는 명제가 좀 더 검증받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 ‘부당하게 수정된 사실의 인지 여부’는 이후 한 전 위원장의 행동을 범죄로 볼지를 가르는 주요 가늠자다.
그럼에도 행정법원은 한 전 위원장이 복귀하면 “방통위 심의·의결 과정과 결과에 대한 사회적 신뢰뿐만 아니라, 공무집행의 공정성과 국민의 신뢰가 저해될 위험이 있다”고 봤다. <티브이조선>의 재승인 심사 점수가 ‘충족→과락’으로 바뀐 걸 알면서도 경위를 파악하지 않아 방통위원장으로서 ‘성실 의무’ 등을 어겼다고 봤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에서의 쟁점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이날 재판에는 한 전 위원장뿐만 아니라, 양아무개 전 방통위 국장, 차아무개 전 방통위 과장, 윤아무개 전 심사위원장, 윤아무개 전 심사위원, 정아무개 전 심사위원 등 6명이 참석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8월25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지난 이야기: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여권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지난해 6월부터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검찰 수사를 받았고 2020년 <티브이조선> 재승인 심사 때 점수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대통령실은 지난 5월 그를 면직했다. "직접 중대 범죄를 저질러 형사 소추되는 등 방통위원장으로서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이유에서다. 한 전 위원장은 직권면직 처분에 대해 처분을 취소(본안)하고 집행을 정지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행정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지난 23일 기각했다. 그는 위원장직에 복귀하지 못한 채 형사재판과 행정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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