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부터 시작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파업 전날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 로비에서 열린 파업 전야제에서 이 노조의 조선대학교병원지부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아침햇발] 이창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모두들 공포에 떨었어도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다. ‘쪽잠에 반창고 투혼’도 무릅쓰고 코로나19 감염 환자를 돌봤다. 숱한 이들이 ‘덕분에’라며 고마워했고, 미디어도 정부도 ‘코로나 영웅’이라며 추켜세웠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일상을 되찾은 지 수개월째다. 하지만 ‘영웅’들은 여전히 전쟁 같은 고난이 일상이다. 감염병이 창궐할 땐 “환자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맞설 수 있었다. 감염병이 더는 위협적이지 않은 지금, 그들은 일터에서 “죄송합니다”와 “힘들다”는 말을 연발하며 눈물짓는다.
그들은 분명히 직시한다. 자신들은 ‘천사’도 ‘영웅’도 아닌 언제나 쉽게 뽑고 쉽게 버려지는 ‘티슈 노동자’란 사실을. 또한 절망한다 “반인권적인 폭언, 불규칙한 교대근무, 공짜노동, 무끼니 근무에 줄 잇는 사직”, 어느새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 보건의료 현장의 민낯에. 팬데믹 이전에도, 팬데믹의 절정에도, 일상으로 복귀한 지금도 좀체 달라지지 않고 있는 극한의 일터 환경은 가슴 깊숙이 응어리져 각인된다.
지난주 말, 세분의 간호사와 한분의 간호조무사, 그리고 딸을 간호사로 둔 한 아빠를 만났다. <‘덕분에’라더니, ‘영웅’이라더니>라는 책의 출간을 알리는 북토크쇼에서 저자와 진행자 간의 만남이었다. 낯선 자리에 어색한 표정을 짓던 그들은 할 말이 너무나 많았다.
자신을 ‘명랑한 년’이라고 소개한 경희의료원의 간호사 이순자씨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너무 많은 환자를 돌보는 것”이라며, “선진국처럼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볼 수 있는 날을 그려본다”고 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을 “수비한다”는 을지대병원의 간호조무사 김문영씨는 “50대의 늙은 간호조무사들이 30명의 환자를 혼자 케어한다는 사실을 일반 사람들이 알기는 할까”라고 말하면서 끝내 울먹였다. 그들이 증언하는 한국 보건의료 현장은 그야말로 ‘전쟁 같은 일터’였다.
딸이 유명 대학병원 간호사란 아빠는 그래서 묻는다. “왜 사회초년생들이 4년을 공부하고 6개월 만에 퇴직해야 하나, 왜 보람되어야 할 노동이 고통의 시간이 되어야 하나?” 딸은 하루가 멀다고 눈물범벅인데, “병원도, 세상도 잘 돌아가는” 현실을 아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분명 누군가는 잘못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다. 아빠는 “이제 그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호소하며, 뭐라도 할 태세다.
팬데믹 시기 ‘방호복의 전사’로 환자를 돌보고도 ‘죄책감’에 잠 못 이뤘다는 국립중앙의료원 간호사, 방지은씨는 “이제는 덕분에라고 외쳐주지 않지만, 또 다른 전염병이 찾아와도 3년 전 어느 봄의 시작처럼 환자 곁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방씨는 다만 그러기 위해선 “간호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언하는 의사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해 정직 처분을 내리게 한 전북대병원의 10년차 간호사, 김한나씨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인력 부족이며, 그 해결은 의사를 더 많이 뽑아 업무 부담을 줄여주고 간호사 1명당 돌보는 환자를 줄이고, 간호사의 업무를 명확하게 하면 해결될 일”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말하는 해법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뭇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수없이 말해왔고, 전문가들은 물론 정부도 오래전 인정한 개선책이다. 2021년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 사이에 맺은 ‘9·2 노정 합의’에도 담겼고, 올해 4월 복지부가 내놓은 ‘간호인력종합대책’에도 적시된 내용이다.
이처럼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동의하는데도 왜 보건의료 현장은 좀체 달라지지 않은 것일까? 너무나 절박하고 간절한 현장의 목소리는 왜 번번이 외면되고, 끝내 파업으로 이어졌을까?
이 모든 상황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 특히 보건복지부에 있다. 너무나도 오래 방치했고, ‘노정 합의’로, 때로는 ‘대책’을 통해 이행하겠다고 큰소리치고도 간호사당 환자 비율을 낮추는 그 어떤 실행도, 의사인력 증원도 좀체 진전시키지 못했다. 숱한 논의의 장(협의체)을 가동했지만, 의견 수렴에 그쳤을 뿐, 그마저 다수는 현재 ‘개점휴업’ 상황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실행계획을 내놓으라는 노조의 파업에 “정당하지 못하다”고 매도만 할 뿐, 어떤 대화의 노력도 벌이지 않고 해볼 테면 해보라는 태도다. 복지부는 절박하고 간절한 목소리를 더는 외면하지 말고 결자해지의 자세로 노정 대화에 즉각 나서라. 뜻과 방향이 같은데 마주 앉아 협의 못 할 그 어떤 이유도 명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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